국민 건강권에 대한 정부의 변명… 부산대 의대 윤태호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엉터리 같은 정부를 섬기도록 강요해
윤호창 기자
2024-01-17 오후 10:26:14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과 관련된 이명박 정부의 변명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연일 하늘을 찌르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사실이 나타나서 정부의 변명이 거짓임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국민의 건강권 보호를 내세우긴 하지만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국민의 건강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헌법적 의무마저 내팽겨 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마저 들 정도다.

국민 건강권 보호에 대한 궁색한 변명을 내 놓음으로써 궁지에 내몰린 정부는 이제는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자기 의견을 밝히는 청소년들에게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있느니 이용당하고 있느니 하는 식의 구태의연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이들을 한미 FTA를 반대하는 세력으로 일방적으로 몰아 부친다.

쇠고기 협상을 정치적 문제로 비화시키지 말라고 주장하는 정부와 보수언론이 오히려 이를 정치적 문제로 확대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제는 향후 광우병으로부터 국민 건강권을 보호할 예방대책의 핵심적인 사항인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 조항마저도 미국의 입맛대로 내버려 두었다.

협상 후 발표에서는 이 부분이 강화되었다는 발표를 하였다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미국 식약청의 보도 자료와 관보 게재 내용 간에 혼선이 있었다.” “영문 해석상의 오류가 있었다.” “우리 정부의 커뮤니케이션에 혼선이 있었다.”로 말을 바궜다.

결국에는 “30개월 미만 소의 뇌와 척수는 광우병 위험부위가 아니기 때문에 동물 사료로 쓴다고 해서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로 오히려 미국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아니라 오히려 ‘국민이 엉터리 같은 정부를 섬기도록 강요당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이렇듯 정부 협상 내용의 잘못을 지적하면 계속 말을 바꾸다가 더 이상 바꿀 말이 없으면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우리 정부를 어떻게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새로운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온갖 변명을 늘어놓아야 하는 공무원들의 고충은 또 얼마나 클까? 그들의 자조처럼 아무리 영혼이 없다지만 말이다. 측은한 마음마저 들 지경이다.

광우병에 대한 국민들의 기본적 우려는 본인의 의지와는 별 관계없이 부지불식간에 광우병 위험물질에 노출될 수 있으며 이를 예방하거나 조기에 진단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사전에 확실한 예방대책을 마련한 상태에서 광우병 발생 국가인 미국의 쇠고기 수입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민들의 일반적인 목소리다. 우리 국민들이 모든 쇠고기의 수입을 거부하지는 않지 않는가!

국민의 건강권과 관련한 또 하나의 정책을 예로 들어보자.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이 그것이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 여론이 급속하게 퍼져나감에 따라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은 국가재정전략회의의 협의 결과라며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확고히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기획재정부는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을 들고 나왔다. 영리법인 병원을 허용하면서 당연지정제를 확고히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건강보험 의료수가에 따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리석은 영리법인 병원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에서는 우리나라도 의료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태국처럼 영리법인 병원을 허용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수준이 낮은 태국이 영리병원 허용을 통해 의료산업 투자를 촉진시켰고 아시아 최고의 메디컬 허브로 성장하였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인 것이다.

왜 태국에서 의료관광산업을 활성화하였는지 그 부작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그냥 현상적으로 일부 돈벌이 방식의 의료산업화가 성공했기 때문에 이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로 접근하는 관료적 발상에 대해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

태국은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로 위기 극복 타개책으로 싼 인건비를 장점으로 내세워 관광산업과 의료를 연결시키는 영리의료기관 활성화 정책의 결과로 공공과 민간 간의 양극화 현상이 심각해졌다.

전체 의료기관의 80%를 차지하는 공공의료기관의 우수한 의료진들이 영리병원으로 빠져나가는 두뇌 유출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참여정부 때에는 싱가폴을 칭송하더니 이제는 태국이 칭송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국민의 건강권을 이야기하면서 국민의 건강권을 잘 보장해주고 있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국가들이 모범 사례가 아니라 의료양극화가 심각한 태국을 모범사례로 드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보건의료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개인의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따라서 이를 이윤 증대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게 되면 국민들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되고 이는 오히려 경제성장에도 역효과를 내게 된다.

게다가 아직까지 우리 국민들은 유럽선진국에 비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은 의료 양극화를 통해 국민들 간의 위화감만 부추길 뿐 의료의 질 향상이나 고용 창출에 별 효과가 없다.

국민이 부담 없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고용 창출과 의료의 질 향상을 통해 경제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들이 존재한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고 병원의 병상 당 인력 수준을 상향 조정함으로써 고용창출과 의료의 질 향상 만족도 향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국민의 건강수준이 향상됨으로써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그러한 사례다.

그런데 현 정부에는 의료를 영리화하거나 상업화하는 오직 한 가지 길만 존재하는 듯하다. 보험회사의 이익 옹호와 단기에 경제성장률을 높여야 한다는 정부 스스로의 목표에 이미 눈이 멀어 있기 때문이다.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 쇠고기 수입과 의료 양극화 심화의 우려가 있는 영리법인 병원 허용은 그 자체가 국민건강권에는 치명적인 것들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할 것’이라는 말만 반복적으로 늘어놓는다.

문제는 이제 이러한 말을 국민들이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을 내놓아야 할 지 해당 정책을 내 놓기 전에 한 번 더 고민하고 신중을 기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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