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어떤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가?
2021-08-25

▲ 김성훈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변호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자연권’ 사상이 국가로부터 공인된 것은 불과 200여 년 전이다. 근대 시민혁명을 통해 비로소 국가의 존재 목적이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다는 이론적 기반이 확립된 것이다. 이를 통해 정부 권력은 국민이 동의하는 범위에서 발생하고 국민과 합의 없이는 세금을 징수하거나 군대를 조직할 수 없고 국가의 운영에 필요한 제도를 만들 수도 없게 된 것이다. 


헌법상 ‘자유권적 기본권’과 이를 위한 리더십 

시민혁명 당시, 생명권·자유권과 같은 자연권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절대 권력에 의해 생명과 신체의 자유가 침해되고 신분제에 의해 차별 당했던 당대 사람들의 경험은 국가 이전에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불가침의 권리를 국가에게 요구하는 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자연권은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편입되었는데, 이를 ‘자유권적 기본권’이라고 부른다. 국민들은 스스로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결정하고, 자유롭게 거래를 하며(계약자유의 원칙), 내 노력의 결과 얻은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소유권 절대의 원칙). 이러한 자유는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는 평등사상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이유로 근대 입헌주의 헌법상의 기본권은 곧 ‘자유권적 기본권’을 일컫는 말이 되었는데, 자유권적 기본권은 그 본질상 국가 권력의 절제를 요구한다. 국가는 국민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것으로 국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 권력은 국민이 동의한 범위에서 존재하고 작동하게 되므로 국가의 절제는 그 동의의 내용과 방식에 따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국민의 동의는 법률의 형식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법치주의 원리가 등장하게 되는데, 특히 국가의 절제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법의 다른 해석 여지를 최소화하게 되며, 이는 ‘형식적 법치주의’와 연결된다. 

이와 같이 자유권적 기본권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국가는 국민을 간섭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소한의 기능만을 가지고 존재해야 한다. 이와 연결되는 국가의 개념이 이른바 ‘야경국가’이다. ‘야경국가(夜警國家)’는 말 그대로 밤에 순찰이나 해주는 정도의 기능을 가진 국가를 말한다. 개인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국가의 기능은 치안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국가관이다. ‘소정부주의(Minarchism)’라고도 한다. 즉, 최소한의 기능만 가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국가관을 말한다.

야경국가는 자유권적 기본권 중심의 헌법 하에서 국가의 리더십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국가관이다. 국가는 국민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간섭하지 않고 국가의 작용을 최대한 절제하는 미덕을 가져야 한다. 국가의 작용은 국민이 사전에 동의해서 마련한 매뉴얼, 즉 법률에 따라야 한다. 그 매뉴얼(법률)에 대한 다른 해석도 절제되어야 하므로 법률의 문언을 그대로 준수해야 한다는 ‘형식적 법치주의’가 강조된다. 

이러한 체제 하에서는 국가 지도자의 권한도 매뉴얼대로 운영되는 국가 시스템을 관리하는 범위에 한정되며, 매뉴얼을 벗어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판단은 억제된다. 지도자는 관리자로서의 덕목을 갖추면 그것으로 충분하며, 매뉴얼에 따르는 것 이상의 능동적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그래서 행정 작용에 대한 사법 심사는 매뉴얼에 충실 했는지의 여부에 한정된다. 

‘사회권적 기본권’의 등장과 국가의 역할 확대

근대 이전의 신분제 사회와 비교했을 때, 자유권적 기본권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사회는 당대 사람들에게 신세계와 같았을 것이다. 국가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누구나 평등한 지위에서 자유롭게 거래하고 경쟁하며, 그렇게 획득한 재화를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유토피아와 같은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간의 본성과 환경적 요인 등이 결합한 근대의 세상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니었으며, 국가의 억압에서 벗어나긴 했으나 타인에 의해 또는 개인적 사정에 따라 자유가 제한되기도 하였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고 주어지는 기회도 달랐으며, 우연한 사정에 따라 삶의 기반이 좋아지거나 무너지기도 했다. 재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은 이를 바탕으로 계속 부를 축적하는 반면, 근로를 해야만 겨우 생계가 유지되는 사람에게 사유재산 제도는 무의미한 권리가 되고 말았다. 즉, 국가가 간섭하지 않고 방임하는 자유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원시시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부조리는 이념 대립에 이어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결국, 국가가 국민을 방임하는 방법으로 개인의 ‘소극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없다는 반성이 대두되었다. 국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확산되었던 것이다. 이는 헌법상 ‘기본권의 진화’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른바 ‘사회권적 기본권’의 등장이다. 

국민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헌법 제10조). 행복하다는 것은 단순히 생존권을 보장받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프면 치료를 받아 건강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건강권),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며(환경권, 주거권),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노동권), 문화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문화권) 행복한 삶 혹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편,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생각도 수정이 필요하였다. 나이나 성별, 개인의 능력과 환경에 따라 발생하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이들을 조건 없는 무한경쟁으로 내몰게 된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부여하되 상대적 약자에 대해서는 국가가 나서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할 때라야 사회 전체의 행복추구권이 보장되는 것이다. 더불어, 스스로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을 받는 것은 개인의 수요와 선택이 아닌 국가가 국민 모두에게 보장하는 권리가 되어야 한다.

‘자유권적 기본권’이 자유를 보장받는 권리라고 한다면, ‘사회권적 기본권’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자유권적 기본권이 ‘인간’의 권리라고 한다면, 사회권적 기본권은 ‘국민’의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회권적 기본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게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이는 국가의 기능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국가는 더 이상 국민을 방임하는 것으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국민의 천부인권을 간섭하지 않는다는 절제의 미덕에만 머물 수 없게 된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보장할 의무를 지게 된 것이다. 법률이라는 매뉴얼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형식적 법치주의’는 법의 문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국민의 윤택한 삶이 보장될 수 있도록 법을 해석하고 능동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실질적 법치주의’로 진화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근대를 극복하고 현대의 문을 열었으며, 야경국가에서 복지국가로 국가관의 전향이 이루어졌다. 자유권적 기본권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 입헌주의 헌법은 극복되었고, 사회권적 기본권이 추가된 현대 복지국가 헌법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현대 복지국가는 필연적으로 그 역할에 따른 ‘큰 정부’를 전제로 한다. 국가의 기능이 야간 순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삶 전반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수준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현대 복지국가에 요구되는 지도자의 리더십

현대 복지국가의 지도자 리더쉽은 근대 입헌국가의 그것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매뉴얼을 관리하는 수동적 리더십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하게 자원을 투입함으로써 위험을 관리하는 고도의 정무 능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행정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공적 자원을 배분하고 지원하는 종합적 판단 능력과 고도의 추진력이 중요해졌다. 

매뉴얼은 최소한의 질서를 규율할 뿐이며,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모든 경우를 예정하고 있지 않다. 그 공백을 보완하는 것을 넘어 필요한 정책 결정과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의 소재를 분명하게 하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업무에 따라 분산된 권한과 자원을 조율하여 구체적 사안에 어떻게 투입할 것인지, 그 경우에 파생되는 행정적 문제와 책임 소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복지국가 지도자의 중요한 임무가 된 것이다. 

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군 앞바다에서 발생한 유조선 충돌 사고로 약 7만9천 배럴의 원유가 유출되었다. 이 사고로 기름띠가 인근 해안으로 확대되었고, 어민들의 삶에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했다. 노 대통령은 해양경찰청장의 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분노를 표출했다. 해양경찰청장은 소형 선박이 많이 필요한데, 보험사의 비용 문제로 힘들다거나 날씨가 좋지 않다는 등의 현실적 문제를 언급하였다. 이때 노 대통령은 기름띠 확산의 방지라는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고 불가항력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라고 강력하게 지시했었다. 비용과 책임 문제를 이유로 방재에 소극적이지 말라는 뜻이었고, 이로 인한 책임은 국가에게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은 매우 안타깝다. 재난의 크기는 모두에게 같지 않다는 대통령의 언급은 코로나19 재난 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번 재난 과정에서 부를 축적한 사람도 엄연히 존재한다. 반면에 생업 자체를 상실한 사람들도 많다. 안정된 월급을 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사업장이 폐쇄된 자영업자도 많다. 그러므로 재난지원금 지급 사안은 결코 정치 공학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재난으로 인한 피해와 국민의 필요를 살피고, 여기에 상응하는 지원을 하는 것은 현대 복지국가의 헌법적 의무에 해당한다. 

그런데 똑같은 금액을 전 국민에게 일률적으로 뿌리자는 일부 정치인들의 주장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우리 헌법의 원리를 감안할 때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주장이 헌법상의 가치보다 일부 정치인들의 편협한 이해관계에 따른 기형적 발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더군다나 그 이유로 선별비용을 운운하는 것은 현대 복지국가의 원리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한다. 그런 비용을 들이더라도 헌법상의 의무를 부담하면서 국민 전체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 복지국가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산화 수준의 향상과 행정 능력의 발달로 인해 선별비용은 극히 미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리하자면, 능력이 있고 풍족한 사람에게는 자유를 보장하되 그렇지 않은 영역들을 계속 살피고 확인해서 국가의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 복지국가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정부는 정치권의 힘에 밀려 국민 하위 88% 지급을 합의했는데, 그것마저 이재명 경기도지사로 인해 왜곡될 처지에 놓여있다. 이 지사는 경기도의 소득 상위 12%에게도 경기도 재정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나섰다. 국민의 세금으로 형성된 국가의 자원을 지원의 필요와 무관하게 무차별적으로 투입·배분하는 것은 현대 복지국가의 헌법이 지향하는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과 거리가 멀다 하겠다. 

화재 당시 떡볶이 먹방 출연과 지도자의 리더십

‘소방기본법’상 화재방재 업무의 최고 책임자인 이재명 지사가 최근 화재 당시에 관할지역을 벗어난 자리(특히, 떡볶이 먹방 출연)에 있었다는 비판을 받자 해당 행정청은 매뉴얼대로 업무를 처리했다는 취지의 해명을 한 사실이 있었다. 앞서 언급 했지만, 근대 야경국가에 대한 반성으로 열게 된 현대 복지국가 체제에서 지도자의 리더십은 매뉴얼에 따랐다는 것으로 합리화 되지 않는다. 화재 진압이 단순히 ‘불을 끄는’ 행위에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뉴얼을 초과해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요소들을 능동적으로 파악함으로써 행정적 지원을 하거나 민간과 소통을 강화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경찰·군대 등 다른 자원의 투입 요청을 고려할 필요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함으로써 실무자들이 아무 걱정 없이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투입하고 방재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최고 책임자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현대 복지국가에서 국민의 ‘필요’에 상응하는 보장(사회권, 적극적 자유)은 자유권적 기본권의 소극적 자유 보장과 다르다. 사회권 보장은 단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행복과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이 단숨에 정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것의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을 현장에서 살피고 매뉴얼이나 기존 인력 및 제도로 해결되지 않는 공백에 집중하려는 적극적·능동적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경기도의 해명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복지국가 헌법 하에서 국가와 지도자의 존재감은 커져갈 수밖에 없다. 장차, 사회의 변화는 급격해지고 기술의 발전은 4차 산업혁명 등 공간적·학문적 경계가 희석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예정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과 사회적 위험도 나타날 것이고, 기존의 상식과 질서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다양한 갈등과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각지대,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는 계층,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공백 등을 제대로 살피고 해결할 수 있는 고도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단순히 매뉴얼에 따른 자유방임 또는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정책으로 포장된 포퓰리즘은 구시대적 리더십에 다름 아니다. 사회·경제적 사각지대를 살피고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리더십, 즉 현대 복지국가에 부합하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우리는 최근 대선 후보들의 공약과 정치적 행보를 통해 리더십의 차이를 보게 된다. 그런데 더 치열한 토론과 검증의 과정을 통해 각 후보들의 리더십 실체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장차, 사회권적 기본권도 진화와 발전을 거듭할 것이며, 이에 따라 현대 복지국가의 원리도 더욱 고도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유권자인 국민은 대선 과정을 통해 복지국가의 미래 지향적 발전에 기여할 ‘준비된 리더십’을 가진 후보를 ‘매의 눈’으로 선별해야 하고, 경선·선거를 관리하는 정당·정부와 각 후보 측은 여기에 부합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 김성훈 변호사는 1972년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부산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였다. 벤처기업 운영 및 조선 기자재 제조업 근무 중 사법시험에 합격해(사법연수원 38기) 대한변협 인권위원(의료 및 외국인 인권 소위)으로 인권보고서 집필에 참여하였고, 416온마음센터 법률고문, 안산정신보건심판위원, 안산시의사회 법제이사, 성남의료원 인사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법무법인 안산>의 대표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김성훈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변호사) webmaster@parang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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