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비추는 한국정치의 현실과 복지국가 세력의 과제… 제주대 의대 이상이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신자유주의를 맹신하는 범 보수정치세력에 대항하는 범 민주 진보세력의 새로운 정치구상 필요
윤호창 기자
2024-01-22 오후 9:54:45
한나라당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그들이 뭘 잘 해서가 아니라 범민주진영이 워낙 못한 탓이었다. 광범위한 민심이반이었다. 압승한 한나라당 정권이 출범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염증이 지난 참여정부 5년에 걸쳐 일어났던 것에 버금가는 듯하다. 국민의 실망과 염증은 곧 광범위한 민심이반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허탈한 민심을 받아 안아줄 대안이 있는가? 준비된 국가비전을 제시하는 대안 정치세력이 있는가 말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야하고 중산층을 포함한 도시서민과 노동자 농민 등 온 국민이 모두가 행복한 복지국가를 꿈꾸건만 이를 이루어낼 선도적 정치세력은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이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현실이다. 한나라당이 계파싸움과 공천갈등 내분 때문에 지리멸렬로 치닫고 있어도 그래서 정당 지지율이 떨어져도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범 민주 또는 진보정치세력의 정당 지지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명망성과 개인기가 뛰어나거나 이미 지역의 정치토호나 기득권세력으로 깊이 뿌리를 내린 일부 범야권 정치인들이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을 따름이다.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사상 최저가 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이 못마땅해지고 있음에도 어느 정치세력도 한나라당의 대안이 될 실력 있고 믿음을 줄 수 있는 세력으로 국민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통합민주당을 보자. 법률가인 박재승 공심위원장의 혁혁한 공로로 죽어가던 통합민주당이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생명의 연장만을 보장받았을 뿐이었다.

국민 누구도 통합민주당을 한나라당을 대신할 수권정당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로 다수의 국민들이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에 실망하면서도 통합민주당을 선뜻 지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의 여론조사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 통합민주당 공천의 최종 결과를 살펴보자. 모든 언론이 하나같이 ‘용두사미’라고 평가한다. 처음 시작은 신선하고 좋았으되 최종 결과는 실망이라는 뜻이다.

공천심사위원회가 법의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대는 일은 잘 하였으나 통합민주당이 장차 만들고자 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밝혀줄 어떤 국가비전도 제시하지 못하였고 이에 적합한 유능한 인물을 공천하지도 못하였다.

한나라당이 계파공천 나눠먹기 공천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겠으나 기실 공천자 인물의 면면을 보면 질적으로는 한나라당보다 못한 공천이었고 역동적 복지국가의 비전을 기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라는 인물들로 가득 찬 공천 도로 열린우리당 잡탕 공천이 되고 말았다.

다시 한 번 이념적 성향 상 파노라마 공천이 된 것이다. 이런 인물들이 당선된들 이들을 데리고 어찌 강력한 야당 대안적 수권정당을 만들 수 있겠는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국민들에게 주는 실망도 이에 못지않은 수준이다. 진보진영 내부적으로는 불가피한 논쟁이었겠으나 국민들에게는 자기들만의 용어로 싸워대는 운동권 정당의 초라한 모양새가 가히 목불인견이었다.

고작 지지율 5%에 불과한 소수 정당이 집안싸움에 몰두하다 집을 두 쪽 낸 세력들에게 골고루 잘했다고 표를 나눠 몰아줄 국민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기가 막히는 것은 기존 민주노동당을 둘로 나누었으되 제살 뜯어먹기 식으로 세력을 분할하였을 뿐 대중정당으로 국민정당으로 대안적 수권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어떤 가능성도 아직까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늘 보던 그 얼굴에 그 얼굴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이다. 이래서야 마이너리그 운동권 그들만의 정당 그들만의 잔치가 계속될 따름이다. 여전히 민주노동당은 주사파 정당으로 진보신당은 고루한 PD파 정당으로 존속할 것인가?

국민들은 새로움 현재의 민생에 드리운 지속적 불안을 없애줄 새로운 계기 새로운 제도 새로운 사회를 원하고 있다. 통합민주당은 국민이 원하는 그 새로움이 무엇인지 도대체 전혀 모르고 있다. 그들의 인식은 신자유주의의 제도적 틀에 갇혀 있으며 기실 이명박 정부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번에 공천된 후보들이 총선에서 아무리 많이 살아 돌아온들 신자유주의에 지친 척박한 국민의 삶과 만성적 불안의 해소에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어떤 희망이 되겠는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지역구에서 각각 1-2석을 비례대표에서 1-3석을 얻는다 한들 이것이 민생과 국민의 희망에 무슨 큰 소용이 되겠는가?

이들 중 누구도 어느 정치세력도 한나라당을 대체할 수권정당이 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는 동일하게 ‘희망 없고 의미 없는 정치세력’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권가능성과 수권능력이다. 권력의 획득을 가시적 목표로 인식하지 못하는 정당은 이미 유효한 정치세력이 아니다. 불임정당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5년 후의 수권정당으로 보는 국민은 거의 없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아무리 사고를 치더라도 현재의 통합민주당이 5년 후에 집권당이 되리라고 보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

현재의 범야권으로는 수권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는 소리다. 설사 지금 상태에서 집권을 한다한들 통합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보다 국정운영을 더 잘할 것으로 보는 국민도 별로 없을 것이다.

이 파노라마 잡탕정당으로는 참여정부의 혼란만을 재연할 따름이지 그 어떤 이념적 확신도 정책적 새로움도 보여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집권을 했다한들 이들이 그들의 이념과 정책대로 집권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으리라 보는 국민은 거의 없다.

지금으로서는 이들 범야권 정당들 모두가 제대로 된 이념과 국가비전을 가지고 있지도 못할뿐더러 그들의 정책으로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지속적인 신자유주의 정책 추구와 그 결과로서의 양극화 심화 민생의 어려움 국민 불안의 가중은 소위 10%의 상위계층을 제외한 중산층을 포함한 온 국민의 고통 심화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5년 후를 대비한 의미 있는 집권 계획이 절실하다. 신자유주의를 맹신하는 범 보수정치세력에 대항하는 범 민주 진보세력의 새로운 정치구상이 필요하다.

역동적 복지국가를 중심에 놓고 ‘자유주의진보 정치세력’ ‘사회민주주의 정치세력’ ‘민주사회주의 정치세력’과 ‘시민사회와 학계의 범 진보개혁세력’까지 포괄하는 한국적 정치실험이 필요하다.

여기서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봉건적 정치이념이나 교조적 국가사회주의 정치이념이 이러한 한국 사회의 민생과 복지국가 요구에 부합하는 새로운 정치지형의 창출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감히 단언하건대 지금 범야권에 펼쳐져있는 정치 지형과 틀은 단지 전환기에 불과하다. 새로운 정치질서의 창출 과정에서 어쩌면 꼭 거쳐야 하는 성장통의 과정이라고 인식하는 지혜로운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변화한다. 오직 역동적 복지국가를 향한 국민적 요구와 시대적 필연 그리고 이를 향한 새로운 정치의 진전만이 변하지 않고 지속될 뿐이다.

이번 총선이 아무리 실망스러운 결과를 낸다고 한들 모든 복지국가 세력이 실망하지 말고 끊임없이 전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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