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응방향… 제주대 의료관리학과 박형근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진보진영은 국민의료비의 앙등과 민간보험사의 횡포에 기초한 잠재적 불안만 자극
윤호창 기자
2024-01-22 오후 9:47:52
이명박 정부는 보건의료체계 민영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방안을 상반기 중으로 확정하고 하반기에 입법을 완료하며 영리의료법인 허용 방안도 올해 안에 확정짓겠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구체적인 의료 민영화 방안으로는 전면적인 민영화를 의미하는 미국식 의료보장 모델 혹은 중간단계로서의 네델란드 모델이 주로 논의되고 있다.

그동안 관련 전문가들이 예측한 대로 의료 민영화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한 법 개정’ ‘영리병원 합법화’를 요체로 하며 민간의료보험의 역할에 대한 우리 정부의 규제 수준에 따라 미국 모델인지 아니면 네덜란드 모델(2006년에 개혁된 네덜란드 의료보험 방식은 독일식의 조합주의 사회의료보험 방식과 미국식 완전 민간의료보험 방식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으며 독일식으로부터 미국식으로의 이행기 단계로 볼 수도 있겠음)인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세부추진 방향에 대해서는 앞으로 주의 깊게 지켜볼 일이다.

마이클 무어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에서 잘 묘사되어 있듯이 의료 민영화는 의료이용 절차의 복잡함과 까다로움 의료보험료와 국민의료비의 앙등 민간의료보험사의 고비용 환자에 대한 보험가입 거절과 잦은 진료비 지불 거부 높은 의료비로 인한 가계 파탄의 증가 의료이용의 양극화 등 수많은 사회경제적 문제들과 갈등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왜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것일까?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의료 민영화에 대해 우리가 정확하게 알고 효과적으로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그저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의 화신’이기 때문이라는 단순 논리는 이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우선 의료 민영화에 대해서 청와대와 경제부처를 포함하는 정부 의료 관련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한국사회 주류 엘리트들 간에 ‘의료서비스 산업의 육성을 통한 경제 성장 기조의 지속’이라는 굳건한 삼각동맹이 체결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조업 분야의 투자가 첨단 업종에 집중되고 기술수준이 떨어지는 단순 제조업의 경우 중국이나 동남아로 이전되면서 제조업 전반의 고용창출효과가 지속적으로 저하되고 있다.

한마디로 거시경제 운용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제조업 투자의 여지가 줄어들고 내수 진작 효과가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국가경제의 성장 기조 유지와 자본의 수익 창출을 위한 새로운 투자 공간이 절실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와 자본이 주목한 분야가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 즉 의료 교육 금융이다. 영세 자영업자 중심의 국내 서비스 산업의 GDP 대비 매출 비중이 2003년 기준으로 OECD 국가들 평균에 비해 10%나 낮다는 사실은 국내 서비스 산업의 높은 성장 잠재력을 보여준다 하겠다. 또한 서비스업은 제조업보다 취업유발계수가 1.7배 크기 때문에 고용창출효과도 더 높다.

의료 분야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07년 OECD 보건통계를 보면 자료를 제출한 19개 나라의 2004년 전체 고용인구 중 보건의료종사자의 평균비율이 6.12%인 반면 우리나라는 3.1%로(2004 경제활동별 지역내총생산 자료 통계청) OECD 국가들 평균에 비해 440429명이나 적다. OECD 평균 수준으로 의료분야의 고용이 확대된다면 45만 명에 가까운 신규 고용창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미 우리나라의 의료기술은 세계적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이 의료 일선에서 접하는 의료서비스 질이 이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보건의료 분야의 낮은 고용으로 인한 부실한 인적 서비스’에 있다. 동시에 일부 국민들이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이유로 의료 민영화를 지지하는 왜곡된 인식의 근거가 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보건의료분야의 고용확충 잠재력과 성장 필요성은 이미 충분하다. 문제는 방법이다. 앞서 지적한 신자유주의 삼각동맹은 철저하게 시장의 논리와 자본의 이익에 충실한 방향으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민간보험회사가 국가가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을 대체하도록 하고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허용하여 사적 성격이 강화된 의료기관들과 민간보험회사들 간의 자율계약을 통해 의료서비스의 비용과 질 등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의료체계의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총 진료비가 40조원 대인 현 규모에서 25%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는 보험회사는 10조원의 매출 증가가 가능하고 순익률 10%일 경우 1조원이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 진료비의 연평균 증가율이 10% 이상 수준인데 민영화 이후 그 기울기가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고 그 규모는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간보험회사와 병·의원에 대한 자본투자를 통해 고용이 증가하고 복잡한 민간의료보험 서비스 관행의 원활한 관리와 운영을 위한 추가적 고용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약 의료비가 전년 대비 10조원 증가하면 최소 GDP 1% 추가 성장이 현실화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금의 의료 민영화 추진 주체들이 의료이용의 양극화와 그로 인한 비극의 양산쯤은 국가경제의 지속 성장과 고용 확충 자본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감수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의료 민영화의 요체를 수익에 눈이 먼 보험회사들과 그 입김에 놀아나는 신자유주의 정권 때문이라는 수준으로 단순화시켜 이해하면 곤란하다. 현 정부의 의료 민영화 기도는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

그것은 정의롭지 못한 길이며 사회가 분열되고 국민이 고통을 겪는 길이기 때문이다. 의료서비스 산업화의 외피를 둘러쓴 이명박 정부의 의료체계 민영화 추진은 정확하게 타격하되 한국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서 의료서비스 산업 육성을 통한 지속성장의 기반 구축이 불가피한 국면에 있다는 사실은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의료서비스 산업의 육성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문제는 방법이다. 역사적 경험을 돌이켜보면 자본과 시장의 논리가 주도하는 방식이 오른편에 있다면 그 왼편에는 복지국가의 길이 있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두 대립담론의 균형은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쳐져 있다. 당장의 우리네 의료 민영화 담론 구도만 보더라도 진보진영은 국민의료비의 앙등과 민간보험사의 횡포에 기초한 잠재적 불안을 자극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국민 누구에게나 차별 없는 의료서비스의 이용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의료 인력을 크게 확충하여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임으로써 의료이용의 만족도를 제고하고 내수경제의 진작과 경제성장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 정부와 자본이 추구하는 길을 단순화시키면 민간보험사와 영리병원을 통해 자본을 조달하고 이들의 영업활동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복지국가를 통한 길도 기실 이와 유사하다. 다만 자본시장을 통한 사적 투자가 아닌 세금을 비롯한 공공기금을 활용한 재원조달과 공적 투자로 공공 부문이 중심이 된 고용창출과 경제성장이라는 점이 핵심적 차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위한 공적 투자 재원 마련 방안과 의료 인력 확충의 세밀한 밑그림이 제시되어야 한다. 우선 재원조달 방안부터 살펴보면 조세제도의 개편을 통한 세원 확충이 필요할 것이다.

일정한 수익률을 정부가 보증하고 국민연금기금을 의료산업에 투자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500병상 병원에 추가로 필요한 인력의 규모가 얼마이고 이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얼마를 보상할 것인지 의원급을 중심으로 한 1차 의료의 인력풀은 어떻게 확충하고 얼마나 보상할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여 역동적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으로 삼각동맹의 의료 민영화 기도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시급하다.

물론 이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와 자본이 의료서비스 분야에 돈(국민의료비)을 더 쓰겠다고 작심을 한 이상 발상의 전환을 하자면 역동적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열린 셈이다.

왜냐하면 역동적 복지국가가 추구하는 의료서비스 산업화의 길이 이명박 정부의 삼각동맹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의료산업화의 길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며 지속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 편에서 보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공평하고 이득이 크기 때문이다.

이제 결론은 우리가 신자유주의 의료 민영화에 대응하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의료산업화 담론과 구체적 정책을 민주주의의 광장 한 복판으로 제대로 끌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저작권자 © 파랑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카카오톡 공유 보내기 버튼
관련 기사
전문가칼럼 분류 내의 이전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