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의 복지? 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이태수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명박정부의 복지시장주의와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 노선 실패 가능성 높아
이명박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물음이다. 경제성장률에 목을 매고 70년대 토건국가식의 개발방식을 부활하려는 이명박정부 집권세력들의 의도가 거침없이 드러나는 가운데 ‘복지는 없다’고 예측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그들은 ‘우리는 복지를 결코 경시하지 않겠다’는 답으로 일관하였다. 정말 그런가?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의문부호가 또 다시 꼬리를 물게 마련이다.
이명박정부의 복지정책은 ‘능동적 복지’라는 새로운 용어의 채택으로 대변된다. 지난 2월 새정부의 국정과제를 발표할 때 등장하더니 3월25일 보건복지가족부 대통령 업무 보고 석상에서는 이 새로운 용어에 대한 정의까지 소개되었다.
“빈곤과 질병 등 사회적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일을 통해 재기할 수 있도록 돕고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복지정책”이 능동적 복지란다.
얼핏 보기에는 훌륭한 표현이다. 세부적인 전략목표에는 평생복지 예방 맞춤 등의 수식어도 동원되고 있으니 더더욱 훌륭해 보인다.
그러나 결국 구체적인 단계로 들어가면 이러한 화려한 수사와는 달리 실망과 좌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너무 내용이 빈약하여 실망이며 예의 보수파가 활용하는 전가(全家)의 보도(寶刀)인 시장 경쟁 효율이 핵심이기에 좌절이다.
먼저 능동적 복지와 관련하여 이제까지 발표된 정책 내용이 너무나 부실하다. 적어도 우리사회를 엄습하고 있는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라는 사회적 위기를 의식하고나 있는지도 모르겠다.
노무현정부가 나름대로 과감한 사회정책을 설계하고 일부 대응하기도 하였으나 실패한 이들 위기에 대한 특별한 대응책이 이명박정부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사각지대에 놓인 500만 차상위계층을 어떻게 할 것이며 또한 저임금 비정규직의 대책은 무엇인지 출산파업에 나선 여성들로 인한 저출산과 가족부양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해체일로의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 무조건 참여정부 정책을 뒤집고 보자는 의도 속에 이들에 대한 대책마저 실종된 것이리라.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시장과 경쟁 효율을 기조로 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복지급여는 없다는 워크페어(workfare) 민영보험회사와 영리법인 의료기관의 경쟁을 통해 재정절감과 효율성을 담보하자는 데 오히려 결과는 마이클 무어감독이 적나라하게 보여준 식코(Sicko)의 세계가 될 건강보험제도 개혁.
영유아보육의 고급수요를 충족하자고 공보육의 틀을 깨고 말 보육료 자율화 정책 복지의 공공성보다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앞세움으로써 복지서비스 영역을 민간영리업자들에게 내줄 복지서비스 바우쳐(voucher 서비스구매권) 제도....
결국 부실한 복지정책은 한미 FTA 체결 등 격화되는 세계화 속에서 국민들의 삶을 완전히 승자독식의 정글로 내동댕이치는 결과로 연결되어 멕시코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요 시장과 경쟁 중심의 정책을 편다면 복지국가의 범주 중에서 가장 열위에 놓여 있는 미국의 길을 밟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좋으나 싫으나 앞으로 5년을 이명박정부 치하에서 살게 될 우리는 이 정부가 복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걱정이요 하지 않겠다고 뒤로 발을 빼도 걱정이니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어쩔 수 없이 양극화에 찌든 민초들의 가슴에서 진보에 대한 열망의 싹이라도 트길 바란다하는 이들에 대해 너무 비겁하다 욕할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진보가 척박한 토양에서 많은 이의 고통을 먹고 자라나는 것이라면 아마 머지않은 장래에 이명박정부의 복지시장주의와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 노선으로 인해 그렇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상대편의 오류가 실패를 낳을지언정 우리의 성공 즉 복지국가의 성공을 낳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성공은 오로지 우리 복지국가세력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그들은 ‘우리는 복지를 결코 경시하지 않겠다’는 답으로 일관하였다. 정말 그런가?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의문부호가 또 다시 꼬리를 물게 마련이다.
이명박정부의 복지정책은 ‘능동적 복지’라는 새로운 용어의 채택으로 대변된다. 지난 2월 새정부의 국정과제를 발표할 때 등장하더니 3월25일 보건복지가족부 대통령 업무 보고 석상에서는 이 새로운 용어에 대한 정의까지 소개되었다.
“빈곤과 질병 등 사회적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일을 통해 재기할 수 있도록 돕고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복지정책”이 능동적 복지란다.
얼핏 보기에는 훌륭한 표현이다. 세부적인 전략목표에는 평생복지 예방 맞춤 등의 수식어도 동원되고 있으니 더더욱 훌륭해 보인다.
그러나 결국 구체적인 단계로 들어가면 이러한 화려한 수사와는 달리 실망과 좌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너무 내용이 빈약하여 실망이며 예의 보수파가 활용하는 전가(全家)의 보도(寶刀)인 시장 경쟁 효율이 핵심이기에 좌절이다.
먼저 능동적 복지와 관련하여 이제까지 발표된 정책 내용이 너무나 부실하다. 적어도 우리사회를 엄습하고 있는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라는 사회적 위기를 의식하고나 있는지도 모르겠다.
노무현정부가 나름대로 과감한 사회정책을 설계하고 일부 대응하기도 하였으나 실패한 이들 위기에 대한 특별한 대응책이 이명박정부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사각지대에 놓인 500만 차상위계층을 어떻게 할 것이며 또한 저임금 비정규직의 대책은 무엇인지 출산파업에 나선 여성들로 인한 저출산과 가족부양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해체일로의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 무조건 참여정부 정책을 뒤집고 보자는 의도 속에 이들에 대한 대책마저 실종된 것이리라.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시장과 경쟁 효율을 기조로 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복지급여는 없다는 워크페어(workfare) 민영보험회사와 영리법인 의료기관의 경쟁을 통해 재정절감과 효율성을 담보하자는 데 오히려 결과는 마이클 무어감독이 적나라하게 보여준 식코(Sicko)의 세계가 될 건강보험제도 개혁.
영유아보육의 고급수요를 충족하자고 공보육의 틀을 깨고 말 보육료 자율화 정책 복지의 공공성보다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앞세움으로써 복지서비스 영역을 민간영리업자들에게 내줄 복지서비스 바우쳐(voucher 서비스구매권) 제도....
결국 부실한 복지정책은 한미 FTA 체결 등 격화되는 세계화 속에서 국민들의 삶을 완전히 승자독식의 정글로 내동댕이치는 결과로 연결되어 멕시코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요 시장과 경쟁 중심의 정책을 편다면 복지국가의 범주 중에서 가장 열위에 놓여 있는 미국의 길을 밟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좋으나 싫으나 앞으로 5년을 이명박정부 치하에서 살게 될 우리는 이 정부가 복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걱정이요 하지 않겠다고 뒤로 발을 빼도 걱정이니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어쩔 수 없이 양극화에 찌든 민초들의 가슴에서 진보에 대한 열망의 싹이라도 트길 바란다하는 이들에 대해 너무 비겁하다 욕할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진보가 척박한 토양에서 많은 이의 고통을 먹고 자라나는 것이라면 아마 머지않은 장래에 이명박정부의 복지시장주의와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 노선으로 인해 그렇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상대편의 오류가 실패를 낳을지언정 우리의 성공 즉 복지국가의 성공을 낳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성공은 오로지 우리 복지국가세력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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