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한별의 생활실험2] 가족회의로 극복하는 코로나 우울증
가족 회의에서 내 마음을 털어놓자, 아이들표 밥상이 나왔다
2021-08-12
한 가정이 행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온 가족의 화합, 서로를 위한 배려, 부드러운 관계 등 많은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보호자라는 존재이다.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고 열심히 사회일, 집안일을 하는 평범한 보호자를 우리는 위대한 부모라 한다.

  깔끔한 집, 맛있는 식사, 쾌적한 잠자리 뒤엔 늘 주부들의 고달픈 하루의 노동이라는 가치가 숨어있고, 주부가 맘 편하게 집안 일을 할 수 있도록 직장에서 온갖 시련을 딛고 월급을 가져다 주는 남편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결국 가정이 화목한 것은 남편과 부인, 혹은 조부모가 서로를 위해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위대한 부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그런데 이 시점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가족을 위한 나의 희생은 무엇이었을까? 남편, 자식이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다 간섭하며 해주는 것이었을까? 그것을 현모양처의 열정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뭔가가 부족한 인생. 가족을 위해 자신의 열정을 다하는 어머니의 삶 속에서 내 인생은 늘 2순위였다고 기억한다. 20대에 서화작가로 지회장까지 맡아 열심히 활동하던 나였는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작가의 꿈을 포기한 이후 나는 자녀교육에 올인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른 노래는 동요하고 자장가밖에 없었다. 집에는 늘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 과자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심지어 카레, 라면까지도 순한 맛. 나의 희망도 늘 2순위였다. 그리고 그 다음 순위는 아예 없었다. 2순위에 만족하자고 세뇌시키는 것, 이것이 부인이자 엄마의 그리고 자식된 도리를 행복하게 수행하는 나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


▲ 가족 밥상을 마련하는 아이들

  그런 나의 삶에 반란의 깃발을 꽂게 해 준 것이 바로 코로나 우울증이었다. 우리 집은 코로나 때문에 학교를 안 가는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족과는 달리, 직장과 학교로 인해 모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 게다가 어머니도 아프셔서 병간호를 하는 터이다. 문제는 그 집들을 차례로 돌아가면서 내가 청소, 빨래, 음식을 다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부의 임무라는 명목으로. 이렇게 열심히 살면서도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갑자기 화가 나면서 동시에 극도로 우울해 졌다. 가족들을 대할 때 겉으로 친절하면서 속으로는 왜 도와주지 않는거야...꼭 내가 힘들다고 표현해야지 아나? 가족들이 야속했다. 그래서 끙끙대다가 남편에게 결국 서운한 마음을 털어놓게 되었다.


▲ 가족밥상을 마련하는 아이들

늘 생글생글하며 활기찼고 걱실걱실 집안일도 잘했던 내가 이렇게 말하니 남편은 당황스러웠나보다. 나는 그냥 이런 상황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집안일을 좀 나누어 하면 훨씬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고. 남편은 내 눈을 보며 ‘몰랐네’라고 한 마디 했다. 그리고 이번 주 가족 회의할 때 얘기해 보겠다고 했다. 어떻게 모를 수 있지? 나는 어처구니없고 싱거운 남편의 대답에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그나마 기대를 하며 주말을 기다리기로 했다.

  매달 한번 씩 진행하는 가족 회의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단지 간단한 규칙이 있었는데 화를 내거나 따지지 않고 자신의 심정을 얘기하면서 문제점의 해결책을 찾는 방법으로 해왔다. 지금껏 제시했던 문제점은 주말에 가족들이 모일 때에는 각자의 시간을 갖는 것도 존중하면서 가족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코로나 시대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은 산책과 TV영화감상하기, 카드, 보드놀이나 윷놀이 등이었다. 우리는 선선한 시간 산책을 하고 저녁에는 영화를 함께 보거나 놀이를 하면서 주말 습관을 바꿔나갔다.

  이번 주는 남편이 내 이야기를 슬며시 꺼냈다. 아주 자연스럽게. 집안일에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얘기해 보자고 하면서 먼저 나에게 말을 해 보라고 했다. 나의 지금의 심정을 솔직히 털어 놓으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뭔가 걱정이 되면서도 기대 반인 상황이 되었다. 나는 내가 매일하는 일을 말해 보았다. 음식 만들기, 설거지하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그리고 가끔씩 재활용품, 일반쓰레기 버리기, 장보기 등을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이 일들을 의무로 생각하고 즐겁게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병원에 오가고 남편과 아이들까지 찾아다니며 여러 집을 관리하는 게 힘들다고 얘기하였다. 이렇게 해서 물꼬가 터졌고 "이렇게 엄마가 힘든 상황에서는 우리 모두 서로가 돕는 게 어떨까?" 라고 남편이 얘기를 꺼내주는 통에 나는 그래준다면 감동을 받을 거라고... 속으로 울면서 대답하였다. " 하긴 엄마가 대부분의 집안일을 다해요." 아이들은 눈을 깜빡거리며 새삼스레 우리 집의 상황을 인지해 가기 시작했다. 딸애한테도 세탁기 한번 안 돌리게 한 완벽한 주부의 모습으로 보이길 원했던 내가 나의 속마음을 털어 놓은 첫 사건이다.

  가족들은 각자 의견을 내놓았다. 돌이켜보면 아주 쉽게 얻을 수 있는 해결책을 왜 지금껏 나는 시도하지 못했을까 반성이 된다. 우선 남편은 자신의 빨래와 청소는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아이들도 청소와 빨래는 자신들이 해 보겠다고 했다. 이정도만 서로 나누어도 나의 일은 훨씬 수월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이야기들이 구체화 되었다. 장보기는 주말에 가족이 함께 보기, 가족들이 모였을 때 설거지는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음식물쓰레기, 재활용품, 일반쓰레기 버리기는 가족들이 산책 나가기 전에 버리고 가기로 정했다. 함께 하면 일이 훨씬 수월해 진다고 이구동성으로 의견을 모았다.

 아이들은 표를 만들고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수월하게 내 일은 온 가족이 나눌 수 있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나의 불평 한마디로 해결책도 없이 푸념으로 끝날 일을 가족회의를 통해 의논하니 행복의 요소가 되었다. 나는 갑자기 소공녀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늘 외로웠지만 애써 즐기던 집안일을 함께 나눌 가족이 생겼다는 것이 믿기 힘들었고, 그것이 모두가 원해서 하겠다는 말들이 정말 고마웠다.

   주말 저녁 남편과 내가 외출했다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우리 둘을 맞으며 생각지도 못한 깜짝 요리를 선보였다. 세 아이가 함께 1시간동안 장을 보고 평소에는 먹지 못하는 스테이크와 연어 요리를 준비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요리 유투브를 보고 재료를 사와서 멋진 셰프의 요리법을 그대로 모방하여 우리를 맞이했다. 큰애는 스테이크는 센 불로 튀긴 후 구워야 맛좋은 육즙이 흘러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멋진 셰프님이 되셨다. 둘째는 토마토에 치즈를 가지런히 놓아 만들고 셋째는 연어에 양파를 곁들여서 선물했다. 우리 부부에게 이렇게 주말의 행복을 선물한 아이들 스스로도 행복해 했다. 남편은 밖에 나가서 먹으면 몇 십 만원은 될 것 같다고 하니 아이들은 웃으며 5만원도 안 들었다고 가성비 좋아요~하며 흐뭇해 했다. 나의 우울증은 이렇게 해소되어 갔고 우리 가족은 보이지 않게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 가족회의가 만든 아이들의 밥상


▲ 가족회의가 만든 아이들의 밥상

 

홍한별 기자 honguu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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