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경의 생활실험 1] 급변하는 사회가 주는 ‘수퍼울트라파워 우먼’
2021-07-07
1970년대 서울 강남의 부동산이 들썩일 때 부각되었던 사회 현상 중의 하나는 ‘복부인’이라는 존재의 등장이었다. 70년대 후반 40대였던 복부인은 50년대 고등학교를 다닌 여성들로 상위 5% 안에 드는 여성들이었다. 집안 살림을 전담하던 고학력의 현모양처형 주부는 근점절약을 통한 집안 살림의 유지 또는 재산 증식의 능력을 발휘하는 복부인임과 동시에 교육과 명문학교, 8학군을 만들어내는 육아와 교육 담당자이기도 했다. 특히 그때부터 교육은 계급 상승의 사다리이자 상승계급 유지의 수단으로 중요했기 때문에 부모 모두의 역할이 필요했다. 입시에 필요한 고급정보는 어머니의 역할이었고, 좋은 상급학교를 보내기 위한 경제력은 아버지의 능력이었다. 대한민국 유사 이래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가던 그 때 그 시절만의 이야기일까?

코로나 이전부터 예견되어 온 4차 산업혁명 사회라는 변화. 알파고 등장으로 학부모들은 미래 일자리가 로봇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학습했다. 그리고 예측불가능한 미래에 대해 자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학부모, 특히 엄마들은 불안했고 여전히 지금도 불안해 한다. 기존의 선배들의 학습 방법에 더 고착화되거나 아니면 새로운 교육 정책이 자주 바뀌자 이런 정보에 능숙한 학원에 의존하기 쉬웠다. 코로나 이후 더 가속화된 사회 변화로 학부모로서의 40대 여성은 무엇을 갖춰야 했던가? 현대판 복부인으로서의 등장은 어떠한가? 부동산 정책과 교육 시장의 변화에 따른 정보, 그리고 남발하는 각종 미디어의 허위조작뉴스와 SNS 소식 등에 파묻혀 끊임없는 미디어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당장 미래 사회 변화를 이해해야만 했다.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자녀들의 수업이 온라인으로 변화하자 이에 맞춰 학부모도 배워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소통하고 미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최근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학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후위기에 따라 많은 생활정책들이 펼쳐지면서 마치 과거 ‘새마을운동’을 실행하듯 다양한 생활형 실천 활동이 가족을 돌보는 여성들에게 부가되고 있다. 나와 우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환경 실천을 하는 것이 뭐 그리 엄청난 일일 것이냐? 당연히 참여해야할 일임은 분명하다. 단지 그 내막을 살펴보면, 교육에서부터 환경까지 이 모든 것이 결국 ‘돌봄’ 이슈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신이 세상 모든 아이들을 돌볼 수 없이 엄마에게 ‘모신’이라는 직책을 주었다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 여성에게 얼마나 시급하고도 혼란스러운 수퍼울트라 파워의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돌봄을 여성의 책무로 삼는다는 것에 대해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봄’에 대한 회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가 부여하는 ‘돌봄’ 유형의 폭과 속도를 맞춰가기 위해 여성들이 느껴야 할 피로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그 돌봄의 저평가된 비용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 수업의 정상화가 어려워졌지만,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만 하는(예를 들어 부모 모두 직장을 가지고 있거나 하여 학교에서 돌봄을 맡아야 하는) 학생들을 위해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도담도담’ 선생님을 뽑아 이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각 지구별 특색에 맞춰 도담도담 선생님을 선발하는 데 있어 확연히 보인 현상으로 이 돌봄 봉사직에 상당히 고학력의 유능한 경력 단절 여성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이다. 고학력이면서 수많은 자격증을 쌓은 많은 경력 단절 학부모들이 진입 가능한 분야가 ‘돌봄’ 영역이라는 현실이 다시금 보였다. 물론 이 일 자체에 전문성을 많이 인정해주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교육 봉사직’이라는 표현에서 암시하고 있는 바가 그러한 것이기에... 이런 ‘경력 단절’이 무서워 아이를 낳지 않거나 결혼을 회피하는 여성이 느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돌봄’이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모신의 입장에서 지구 환경도, 아이도, 미래 사회도 돌봐야 하는 역할이 여전히 여성들에게 몰려있기에 이러한 일들로 인해 여성이 느껴야 할 몇 곱절의 피로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 대지모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출처 : 파랑새(http://www.parangse.org)

다양한 작은 도서관에서는 줌으로 다양한 분야의 평생교육이 펼쳐진다. 양질의 수업들을 듣는 그 수혜자는 대부분 여성들인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있어 이러한 교육은 정신적 건강함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인가 경제 활동 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연결하고픈 꿈을 간직한 것을 알 수 있다. 꿈꾸는 이상주의자에게 현실은 아직 녹록치 않고, 시간 봉사자 내지는 시간 노동자로의 전환을 유도한다. 많은 중반 이후의 여성들에게 시간노동자로서의 역할은 주로 ‘돌봄’ 업무에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수퍼울트라파워 우먼의 역할론은 과연 어디까지 이들에게 가능성의 사다리를 연결해 줄 수 있을까? 역시나 70년대 복부인이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닐까? 문득 신에게 묻고 싶어졌다.

이윤경 기자 webmaster@parang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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