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민주의자’가 오바마의 당선을 주목하는 이유...최병천(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반란의 ‘최초’ 전쟁 - 금융에 대한 산업 우위의 복원
윤호창 기자
2024-01-19 오후 2:23:17

▲ 버락 오바마 대통령 (사진출처=픽사베이)

맑스 왈 “검은 피부의 노동이 해방되지 않으면.....”

맑스의 『자본론』을 보면 “검은 피부의 노동이 해방되지 않으면 흰 피부의 노동이 해방될 수 없다”는 취지의 문구가 나온다. 미국 사회의 흑인 차별을 염두에 두고 쓴 문장이다. 심지어 맑스는 노예 해방을 선언했던 링컨이 죽었을 때 제1인터내셔널 평의회 의장 공동 명의로 “친애하는 노동계급의 벗”이라는 추도사를 보낼 정도였다.

그런데 1776년 미국이 건국된 지 232년 만에 최초로 ‘검은 피부’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오바마가 진심으로 ‘친애하는 노동계급의 벗’이 되어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물론 오바마의 당선으로 인종 차별이 한꺼번에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당선’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미국 역사를 바꾼 셈이다.

◇ 구(舊)자유주의를 타도했던 뉴딜 정책의 본질은 ‘금융억압’

오바마의 당선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과연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까라는 지점 때문이다. 이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다만 우리는 이 지점에서 뉴딜과 신자유주의의 관계에 대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의 앞으로의 정치 행보를 지켜보는 우리들의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경제사적으로 볼 때 신자유주의 경제 노선의 본질은 ‘뉴딜의 해체’이다. 뉴딜 이후 1960년대 말까지 미국 사회가 이룩한 다양한 사회경제적 성과를 파괴하여 ‘뉴딜 이전의 미국 자본주의’로 복귀하는 것이 미국 신자유주의 정치의 정책적 본질이다. 그럼 도대체 뉴딜 이후 자본주의가 어떻게 변화한 것일까?

19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추진된 뉴딜정책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변화는 다양한 측면에서 일어났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금융억압’이 가장 중요한 변화다. 다른 말로 <금융에 대한 산업의 우위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금융과 산업의 분리정책을 의미하는 금(융)-산(업) 분리 정책도 대공황 이후 추진된 미국 뉴딜의 산물이다.

여기서 ‘금융억압’의 의미는 케인즈의 계급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통상적인 자본가-노동자의 계급 구분과 달리 케인즈는 계급을 셋으로 구분했다. 금융자본가-산업자본가-노동자의 3등분이 그것이다.

◇ 케인즈의 계급론 금융자본가-산업자본가-노동자

케인즈가 보기에 자본주의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 금융자본은 ‘억압’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실제로 20세기 경제사에서 흔히 ‘황금기’(Golden age)라고 불리는 1940년대~1960년대의 놀랄만한 경제 성장과 놀랄만한 빈부격차의 완화가 가능했던 작동 메커니즘은 실제로 케인즈적 세계관의 실효성을 입증한다.

금융자본의 억압을 통해 산업자본은 ‘장기적’ 시야를 갖고 (반드시 리스크가 수반되는) 혁신적 투자를 할 수 있었고 ‘장기적 혁신’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노동의 헌신적 도움을 받기 위해 노사 간의 ‘민주적’ 타협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뉴딜의 해체를 주창하는 신자유주의의 근본 난점은 경제학적으로 볼 때 경제에서 계획과 시야의 ‘단기주의’이다. 기업이 ‘혁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안목으로 기업을 지원해줄 수 있는 <헌신적+장기적 자본공급>과 <헌신적+안정적 노동공급>을 필요로 한다.

노동 착취적인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혁신에 성공할 수 없다. ‘독보적 경쟁우위’를 의미하는 경제적 혁신은 본질적으로 시장에서 구매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 내부에서 ‘장기적 협력’을 통해서만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세기 중반 자본주의 황금기 시절 헌신적 자본공급은 금융억압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헌신적 노동공급은 ‘사민주의적’ 계급타협을 통해 이룩했다. 금융억압은 산업자본과 노동 모두에게 통일전선 구축의 상대방이었던 셈이며 사민주의적 복지국가의 거시경제적 전제 조건이었던 셈이다.

◇ 신자유주의의 근본문제는 단기주의: ‘금융헌신성’과 ‘노동헌신성’의 파괴

반면 뉴딜의 해체를 자신의 본질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노선의 핵심 특징은 <산업에 대한 금융자본의 우위>로 정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신자유주의적 경제 노선은 뉴딜의 장점과 정확하게 대비되는 근본적인 단점을 갖는다.

뉴딜과 케인즈의 장점이 헌신적 자본공급과 헌신적 노동공급에 근거한 ‘장기적 혁신체제’였다면 신자유주의의 치명적 단점은 자본과 노동 모두에게 나타난 ‘단기성’이다.

먼저 ‘자본의 단기성’이다. 즉 유동성이 심화되고 통화 창조 현상의 과잉으로 인한 금융거품이 극심해지고 포트폴리오 중심의 단기주의적 투자 행태를 보이게 된다. 그에 맞춰 떼 거리적 금융 행태는 증폭된다. 이제 금융은 산업의 ‘토대’가 아니라 산업에 대한 ‘수탈자’로 변모하게 되었다.

동시에 신자유주의는 ‘노동의 단기성’으로 현상된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장기적 시야를 갖고 투자하고자 하는 기업가(CEO)는 ‘단기적 성과’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기업이 단기에 성과를 가시화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비용 절감이다.

하청 단가를 인하하고 노동자를 정리 해고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방식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기업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이해관계자들은 ‘혁신의 공동 주체’가 아니라 이제 단순한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반란의 ‘최초’ 전쟁 - 금융에 대한 산업 우위의 복원

그렇기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반란’을 위한 최초의 전쟁은 <금융에 대한 산업의 우위>를 다시 확보하는 것이다. 케인즈적 표현을 빌리면 ‘금융억압’이다. 물론 금융억압은 ‘국제적’ 차원과 ‘일국적’ 차원 모두에서 병행 추진되어야 한다.

‘New 브렌튼우즈 체제’ 논의와 토빈세 도입이 ‘국제적’ 금융억압 정책이라면 금산분리와 금융 감독의 강화 금융 이익에 대한 과세 강화 등은 ‘국내적’ 금융억압 정책에 해당할 것이다.

‘금융억압’이라는 핵심 전쟁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이해관계자들의 민주적 협력에 기반을 둔 경제체제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금융억압’은 <역동적 복지국가>의 수립을 위해서도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우리들의 관제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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