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와 기업이 떠나 쇠락하는 600년 수도 서울(1)
민진규 대기자
2019-02-11
확고한 정치 및 경제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호기를 놓쳐 퇴보하는 서울시, 부동산 정책 실패로 시민과 청년들은 경기도로 내몰리고 있는 중

경북 예천군 의회의원들이 미국과 캐나다의 선진 자치행정을 배우기 위해 출국했다가 현지  가이드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여파가 수습되기는커녕 오히려 소송으로 확대되면서 의원들의 자질, 무분별한 외유행태 등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동안 드러난 자치단체 의원의 추태는 비단 예천군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국민들은 경제불황 속에 본연의 임무는 소홀하면서 세금으로 외유나 하는 의원, 공무원, 단체장 등을 단죄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하필 나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냐고 울부짖을 정도로 억울하겠지만 ‘세상이 변했다’는 말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 민진규(출처 : iNIS)

자치행정을 평가할 첫 번째 대상 도시는 서울시로 600년 이상 한반도의 수도 역할을 자임해왔으며 한국인에게 익숙한 속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듯이 서울시는 수도라는 이점으로 인재와 돈이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발전한 도시이다.

서울시는 한국 주요 대기업, 중소기업, 공기업 등의 본사가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재정자립도도 높아 자치행정의 독립성이 강한 편이다. 또한 1000만이 넘는 우수한 인재가 거주하는 한국 정치의 중심이기 때문에 서울시장의 정치적 입지도 국무총리보다는 높고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자치행정이 파행∙기형적인 형태로 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서울시도 경제∙정치적 상징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쇠락하고 있는 중이다. 전∙현직 서울시장 대부분이 서울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대통령이 되려는 야망에 불탄 것도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다.

지난 20여년 동안 서울시의 자치행정을 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개발한 오곡벨리모델인 ‘5G Valley Model’을 적용해 평가해 세부 지표별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장은 대통령 꿈만 꾸고 의원은 토목행정을 견제하지 못해

정치 여의도로 대변되는 중앙정치와 마찬가지로 서울시의 지방정치도 후진적인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선 서울시장을 역임한 인사는 조순, 고건, 이명박, 오세훈, 박원순 등이며 이명박은 서울 시장에서 정치적 입지를 완벽하게 구축한 이후 대통령까지 차지했다. 참고로 글의 전개상 편의로 전∙현직 시장의 존칭은 생략했다는 점을 이해주기 바란다.

오세훈도 재선에 성공하며 보수당의 차세대 정치인으로 입지를 구축했지만 초∙중∙고생 무상급식 투표를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실패해 자진 사퇴했다.

오세훈의 정치적 판단 실수로 호기를 잡은 진보세력은 시민운동가로 유명한 박원순을 시장 후보로 내세워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했다.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던 안철수가 2위인 박원순에게 양보하는 이변도 진보세력이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재 시장인 박원순은 오랜 시민운동가의 생활 속에 터득한 노하우로 2014년 재선, 2018년 3선에 성공했으며 2022년 여권인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 중 1명이다.

진보 진영의 시장이었던 조순은 학자출신, 고건은 공무원 출신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스타였으며 본인들도 대권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지만 정치적 결단력이 부족해 문턱에서 주저 앉았다.

과거 관선시장들도 서울시장의 정치적 입지로 인해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아 중앙무대에 도전한 사례가 많았지만 대부분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특히 이명박이 서울시를 거쳐 대통령까지 거머쥐자 서울시장을 대통령이 되는 징검다리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하지만 서울시장 자리가 대통령이 되기 위한 가시적 치적을 쌓거나 중앙 정치인들과 경쟁하는 구도가 성립되면서 자치행정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명박의 청계천 복원사업도 외형적으로 성공했지만 하류의 물을 양수기로 퍼 올려 흘려 내리는 반환경적 토목사업의 전형이라고 비판을 받는다.

이명박과 오세훈 보수 출신들이 추진했던 도시 재개발은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불러일으켰다. 박원순의 도시재생과 태양광발전소 건설도 친환경이라는 탈을 쓴 토목행정의 대표적 사례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은 아예 존재감조차 없었던 다른 시장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서울시장의 독단적 행정을 견제해야 할 의원들은 존재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진행 중인 시를 망치는 도심 재개발을 제지하거나 새로운 선진모델을 제시하는 의원은 없다. 의원들의 무능과 해바라기 근성은 서울시민의 미숙한 정치의식을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한 것이다. 서울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의 복사판에 불과하고 정책대결은 실종된 지 오래됐다.

서울시가 ‘대한민국 정치 1번지’이고 서울시민은 가장 정치적으로 선진화된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이미 지방과 차이가 없는 ‘도토리 키 재기’ 수준으로 전락했다. 정치 1번지 시민이라는 자부심은 단순히 ‘자화자찬’식 ‘미사여구’가 아니라 성숙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의원과 시장을 선택할 수 있을 때 자연스럽게 생긴다.

지금까지 서울시장으로 서울시를 성공적으로 잘 이끌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울은 정치 및 지리적 입지로 인해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낙후됐기 때문이다.

시민이 행복하지 않은 도시, 젊은이가 떠나가는 도시, 정치 난장판이 된 도시라는 이미지로 자치행정이 평가 받는 이상 서울시의 정치는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정치인, 공무원, 주민들 모두가 헛된 자부심만 내세우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정상적인 서울 시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업과 청년이 떠나면서 점점 늙고 낡은 도시로 변해가

경제 자치단체가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재정자립도가 낮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의 수입은 지방세와 중앙정부가 내려주는 지방교부세, 보조금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서울시의 재정자립도는 80%가 넘을 정도로 우수한 편이다.

서울시 예산은 2016년 24조원, 2017년 26조원, 2018년 31조원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행정서비스는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

2018년 예산을 보면 사회·복지에 9조8200억원, 교통·안전에 3조6400억원, 공원·환경에 1조7500억원 등으로 절반에 가까운 예산이 소모성 비용에 해당된다.

정작 도시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경제·일자리는 5600억원, 재생·주택은 4900억원 등에 불과한 실정이다. 고령화로 인해 복지재정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표를 얻기 위한 ‘인기영합’식 복지정책은 없는지 돌아봐야 할 때이다.

보수정부 시절에 추진했던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주택가격이 폭등하면서 청년층들이 경기도로 탈출하고 있는데 정작 대학생과 청년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예산은 줄어들고 있다.

정부의 국토 균형발전 논리에 따라 많은 공기업이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했고, 임대료 부담으로 인해 기업조차도 탈 서울 행렬에 동참했다.

서울경제도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업과 청년들이 임대료 부담으로 서울을 떠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서울시는 부동산 가격을 올려 기득권층의 지지를 얻기 위한 재개발사업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서울이 소비 중심의 베드타운으로 전락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강남의 테헤란로는 벤처기업의 요람으로 급성장하면서 미국의 실리콘벨리와 같은 혁신경제의 중심부로 자리매김했었다. 하지만 임대료 급등으로 인해 벤처기업 대부분은 성남의 분당, 판교 지역 등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지금 테헤란벨리는 공실과 상권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대문의 의류타운, 명동과 남대문 시장의 외국인 쇼핑거리, 이태원의 쇼핑거리 등 서울의 소비시장을 주도하던 상권은 망하기 ‘일보직전’이다.

서울시장이 아무리 TV 쇼 프로그램에 나와 인기를 얻어도 도시의 경제적 경쟁력이 저하되면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 경기도는 서울시정의 난맥상을 틈타 알짜기업을 유치하면서 오히려 서울보다 경제를 잘 이끌어가는 지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 자치단체의 경우에도 자치단체장이 정치놀음에 열중하다가 경제가 나빠진 사례가 많다.

서울시도 중앙정부의 경제정책에 보조를 맞출 필요는 있지만 자체 경쟁력이 취약해지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가정용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고 도심 재개발로 주택가격을 올려도 서울시 경제가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1998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벤처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한 것처럼 낡고 늙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하면 서울시는 망할 수밖에 없으며 점점 벼랑 끝으로 걸어가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 전시행정은 광화문광장 재개발, GTX광역철도망 구축, 강남 삼성동 지하쇼핑몰 건설, 종합운동장 재개발, 제로페이 보급 등이다.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하지만 기대 효과는 불투명한 사업이 대부분이다.

박원순 시장이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제로페이도 정작 중요한 시스템구축보다는 홍보와 공무원을 동원한 가입자 확보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500조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는 가계가 부동산 거품으로 얻은 가상의 이익을 바탕으로 즐기던 과시성 소비가 위축되면서 소매업이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OECD국가에 비해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아 이들을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제로페이도 도입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땜질처방에 불과하다.

카드 수수료 1~2% 때문에 자영업자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과밀화된 자영업의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임대료, 물류비, 공공요금 등을 소매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수준으로 인하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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