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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수내용◇ 가장 인구가 많은 안달루시아주◯ 안달루시아(Andalucía)주는 스페인의 광역자치단체인 17개 주 중 하나로 스페인 남부에 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위치 (위키백과)[출처=브레인파크]◯ 가장 인구가 많은 주로 약 840만 명이 살고 있다. 면적은 87,268㎢이며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크다.◯ 주도는 세비야로 남쪽 지역에 있으며 지중해를 끼고 있다. 서쪽으로는 포르투갈과 대서양에 맞닿아 있다. 시에라 남부를 포함하고 있는데 과달키비르강과 온화한 날씨가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농업이 특히 발달했다.◇ 800년 동안 이슬람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 역할◯ 안달루시아는 역사적으로 매우 특이한 지역이었다. 중세 동안 무슬림과 그리스도교도가 직접 만날 수 있었던 문명의 경계선이었기 때문이다.안달루시아는 아프리카의 모로코와도 거리가 굉장히 가깝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이슬람과 그들의 문화가 일찍이 정착했고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약 800년 동안 스페인이 이슬람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들(www.andalucia-web.net/ciudades.htm)[출처=브레인파크]◯ 무슬림들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며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 톨레도 등과 같은 도시를 건설했다. 이 도시들은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아프리카와 유럽, 아랍과 라틴 문화를 하나로 녹여 내는 용광로 역할을 하며 유럽의 르네상스 개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비야에는 이슬람과 유대교가 섞인 유산을 많이 볼 수 있다.◇ 안달루시아의 주도이자 문화예술의 도시 세비야◯ 세비야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심도시로 예술, 문화, 금융의 중심지로 플라멩고가 시작된 도시로도 유명하며 총 8곳의 플라멩고 공연장이 운영되고 있다.◯ 카르멘, 돈 조반니,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등 무려 25개의 오페라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할 정도로 오페라로 유명한 문화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노래・춤・기타로 만드는 종합예술 ‘플라멩고’◯ 플라멩고(flamenco)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발달된 음악이자 춤으로 안달루시아의 전통에 집시의 희로애락을 담아낸 개성적인 음악이다.플라멩고의 3대 요소는 ‘노래, 춤, 기타’로 '정열의 나라 스페인의 심장'이라 불리는 개성적인 민족 감정과 기백이 풍부하고 힘찬 민족예술이다. 본래는 '콰드로 플라멩고'라 하는데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플라멩고 여성무용가의 공연모습, 구글이미지[출처=브레인파크]◯ 향토 문화예술자원으로서 도심이나 전원, 안달루시아의 봄부터 가을에 걸친 수많은 축제와 모임에서 지금도 전통적인 민요와 춤을 즐기고 있다. 플라멩고는 비잔틴 및 유대의 신비주의와 아라비아 민족의 애수를 띤 이국정서와 집시족의 한과 정열의 혼합체라 할 수 있다.◇ 악보없이 구전되고 암기되어 공연되는 예술◯ 플라멩고 공연자 각각의 호칭은 플라멩고 용어로 '바일라오르'(남성무용가), '바일라오라'(여성 무용가), '칸타오르'(남성 가수), '칸타오라'(여성 가수), '토카오르' 또는 '기타리스터'(기타 반주자)라고 한다. 옆에서 장단을 맞추어 소리지르는 관중도 역시 플라멩고를 구성하는 한 요소다.◯ 플라멩고 무용(바일레 플라멩고, Baile flamenco)은 발달 과정에서, 생활의 근대화에 따라 대중이 이 무용을 돌보지 않게 되었을 때 집시가 대신하여 전승과 발전에 힘썼기 때문에, 그 형식에는 집시적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순수한 플라멩고는 캐스터네츠를 쓰지 않고 사파테아드(구두 소리), 팔마(손뼉치는 소리), 피트(손가락 퉁기는 소리)로 구성되며, 콰드로 플라멩고에서는 관중의 할레오(장단맞추어 지르는 소리)도 섞여 열광적인 장면을 만든다.◯ 플라멩고 기타는 민요 춤곡과 함께 발달하고, 안달루시아 민족의 애수가 담긴 감성이 넘쳐흐르고 있다. 이 악기의 특색은 화려하고 상쾌하며 급격한 변화에 찬 음조이다. 특이한 점은 기타 연주나 민요, 무용에 악보가 없으며, 모두가 구전으로 연주되고 있다는 점이다.◇ 관광산업 발달로 개발규제와 시민참여 관광상품 개발◯ 안달루시아 전체 산업에서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관광산업은 2017년 기준으로 안달루시아 GDP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관광객 수는 2,900만명이며 고용창출 인원은 38만명에 달한다.◯ 주도인 세비야 역시 관광산업이 주요 산업이다. 2017년 기준 GDP의 17%를 차지하고 있고 연간 관광객은 500만 명에 달한다.세비야는 역사적 건축물 등의 보존을 위해 도시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개발행위 등을 규제하고 있다.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관광상품 개발, 관광객의 증가에 따른 시민의 주거권 침해 해소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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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수내용◇ 적극적인 마을만들기와 스토리텔링으로 관광명소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동쪽에서 시작해 포르투갈 리스본을 거쳐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길이 1007㎞의 타호(Tajo)강 하구에 알파마(Alfama)라는 달동네가 있다.○ 알파마는 비좁은 골목길을 따라 낡은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교통수단은 마을 중턱을 관통하는 노면전차인 ‘트램’이 유일한 교통수단이라 할 수 있는 빈민가였는데 리스본시와 주민들의 적극적인 마을만들기와 스토리텔링으로 관광명소로 거듭났다.◇ 리스본 발전의 기초가 된 알파마○ 알파마는 리스본의 하늘 위로 봉긋 솟은 상 조르즈 성(Castelo de Sao Jorge) 동쪽 언덕에 있으며 리스본이 발전하기 시작한 최초의 지역이다. 718년에서 1147년까지 리스본을 차지한 무어인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의 기초가 형성되었다.▲ 리스본 바이샤 지구 동쪽 지역[출처=브레인파크]○ 수백 년 후 공식적으로 무어인이 떠나고 난 후에도 그들의 혼혈 후예들은 계속 이 땅에 남았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서민과 선원과 선착장 노동자 계층, 이주민 등이 살아가는 지역으로 자리잡았다.알파마는 1755년 리스본을 폐허로 만든 대지진 때도 피해를 당하지 않은 유서 깊은 곳이지만 한 때 이곳을 점령했던 무어인과 혼혈인의 주거지를 비롯한 빈민가가 수두룩하다.◇ 리스본 관광산업의 중심이 된 달동네○ 흰 벽 사이의 미로 같은 골목길에 타호강을 조망하는 것 외에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해 보이는 달동네지만 리스본을 찾는 연간 관광객 1천200만 명 가운데 1000만 명 이상이 들르는 관광명소이다.○ 알파마 지역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부터로 리스본시는 무어인 최초의 거주지로 리스본을 폐허로 만든 대지진에도 끄덕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각시킨 스토리텔링과 함께 리스본 축제를 이곳에서 시작하기 시작했다.○ 알파마지구는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은 뛰어난 건축적 설계, △이슬람인구가 거주했던 독특한 주거양식, △빈부를 가리지 않는 전망 확보를 주요한 스토리텔링을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손을 댄 곳은 많지 않았다. 도로 옆 주택가 옥상을 자연스럽게 전망대로 만들고 골목길 상가를 아기자기하게 꾸민 게 전부였고 관광객이 몰려들어 발생한 수입으로 시는 주택을 이전과 비슷한 모양으로 한 채씩 재건축 해주면서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알파마 골목 구석구석 다니는 명물, 28번트램[출처=브레인파크]○ 관광객이 몰리면서 빈민가 주민들의 생활에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주민들을 상대하던 조그만 상가도 활성화됐고, 골목길에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과 햇볕을 쐬며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의 일상은 또 다른 관광자원으로 자리잡았다.○ 좁고 고르지 않은 골목은 현대적인 트램이 들어설 수 없어 1930년대에 만들어진 역사적인 트램이 아직도 운행된다.◇ 알파마지구 견학코스 체험○ 방문단은 리스본시가 추천하는 알파마지구 견학 코스를 따라 성조르즈 성을 방문하기 위해 28번 트램을 탄 후 견학 시작점인 포르타스 두 솔(Portas do Sol) 뷰포인트(1)로 이동해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이어 테라스 옆으로 난 한 줄의 계단(2)을 따라 미로길의 언덕으로 내려간 뒤, Calçadinha da Figueira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São Miguel의 교회 탑 중 하나를 전망할 수 있는 자리(3)까지 이동했다.○ Largo de São Miguel(4a)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 교회 옆쪽 커다란 야자수 나무(4b) 앞에 까지 와서 잠시 사진을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지점까지 약 1시간 정도 걸렸다.○ 이어 Calçadinha de São Miguel를 향해서 왼쪽으로 멀리 Santo Estêvão의 탑을 보고(5), 첫 번째 골목에서 왼쪽으로 돌아 Beco da Cardosa(6a)까지 왔다.Beco das Cruzes를 향해 오른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한 번 더 돌아 계단의 꼭대기인 Rua Castelo Picão(6b)에 다다른다. 계단을 내려와 왼쪽으로 돌아 Santo Estêvão 교회의 정문(6c)까지 이르렀다.○ 계단의 끝에서 왼쪽으로 돌면 Largo do Peneireiro(7a)가 있고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계단(7b)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Santo Estêvão(7c) 교회가 나온다.○ 교회 옆의 테라스에서 강가를 볼 수 있고, 교회를 돌아 계단을 내려가면 타일로 뒤덮인 집(8)을 만난다. 이어Escadinhas/Calçadinha de Santo Estêvão을 내려와 계단의 끝에서 옛 공중 욕장을 가리키는 타일이 보이면 왼쪽으로 꺾는다. 이어서 Calçadinha de Santo Estêvão 2번지에서는 16세기 고딕양식 출입문(9)을 볼 수 있다.○ Rua dos Remédios로 다다라서 오른쪽으로 돌아 길을 내려가다 보면 Largo do Chafariz de Dentro(10b)에 다다르기 전에 또 다른 작은 교회의 고딕양식 출입문(10a)을 보게 된다. 그곳에서 Fado 박물관에 방문할 수도 있고, 광장의 북서쪽으로 계속 나아가 야외 테이블을 갖춘 레스토랑에 갈 수도 있다.○ 계속해서 Rua de São Pedro로 내려가면 Fado 레스토랑과 가게들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쳐 계속 내려가다가 Largo de São Rafael를 가기 전에 왼쪽으로 꺾는다(11).○ Largo de São Rafael에서 언덕을 내려가면 오래된 유대광장의 중심 Rua da Judiaria을 볼 수 있다. 유대인 지구였던 이곳에는 옛날부터 남아있는 건축물들(12a)과 아치형 분수(12b)가 있다. 아치형 길 아래로 지나가면 강가에 가까워지면 갑작스레 미로에서 벗어나게 된다.○ 길을 계속 내려가면 Arco de Jesus의 아치형 길 오른쪽으로 Campo das Cebolas(13)가 있다. 아치형 길 아래로 지나가서 타일로 뒤덮인 건물이 나올 때까지 계단을 올라 그 끝에서 왼쪽으로 돌면 Rua de São João da Praça(14)에 다다른다. 95번지는 음료와 식사로 유명한 Pois Café이다.○ 길의 끝에서 타일로 뒤덮인 빌딩(15a)과 오렌지 나무(15b) 옆의 중세 교회의 뒤편을 볼 수 있다. 40-42번지 사이는 Roman Lisbon에 관한 무료 Roman Theater박물관의 출입구가 있다. 교회를 돌아 언덕을 오르면 기념품, 앤티크 샵이 있고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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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수내용◇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대도시였던 코르도바○ 코르도바(Córdoba)는 과달키비르 강을 끼고 로마시대부터 도시가 형성되었다. 코르도바주의 주도가 코르도바이다.○ ‘코르도바 역사지구(Historic centre of Córdoba)는 중세의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에 그 유려함으로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대도시 중 하나로 발전해 10세기까지만 해도 코르도바의 인구가 50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중세 시대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성당과 꽃의 골목 등을 지역 마케팅에 적극 활용○ 오래된 구도심에는 전통적인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나 코르도바는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때에 수도의 구실을 했으므로 이슬람과 스페인 후대 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이슬람 문화의 유적과 중세 가톨릭 문화의 건물이 함께 공존하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마이야 왕조가 건설한 메스키타(Mezquita)는 2만5천명을 한번에 수용할 수 있는 당대 최대 이슬람 사원(모스크)으로 건축되었다가 레콩키스타 이후 르네상스식 개조를 거쳐 현재는 가톨릭 대성당인 ‘코르도바 산타마리아 성당’이 되었다.○ 메스키타 주변지역으로 하얀 벽의 집들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유대인 거리(Juderia de Valencia)는 꽃의 골목이라 불린다.○ 천년 전부터 유대인들이 모여 장사를 하던 지역으로 스페인에 얼마 남지 않은 유대교 회당이 자리하고 있고 벽과 골목을 가득 채운 꽃들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코르도바는 꽃의 도시라고 불린다.▲ 코르도바 꽃의 골목[출처=브레인파크]○ 코르도바시의회가 발표한 2015-2019 코르도바 관광전략에 따르면 코르도바 관광자원의 향상을 통해 도시개선, 관광지로서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관광객 행동의 변화, 새로운 시장과 여행기술의 진화, 공공-민간의 협력을 조사 분석하여 새로운 관광객을 유치하고 다변화된 관광산업을 육성하여 수요에 의거한 관광산업이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관광산업의 육성을 위한 주요 변수로 △숙박시설의 수용력 △항공-육상-해상의 연결 △비즈니스 방문을 위한 공간과 이들을 위한 보완적인 관광 제공이 있다.○ 코르도바의 숙박시설은 92개, 침대수는 6,272개이다. 전체 숙박시설의 85%가 성급 호텔에 속하지만 성급 호텔의 70%는 3성급과 4성급에 분포한다. 이에 호텔을 보완할 수 있는 아파트형 숙박시설의 증가도 주목하고 있다.○ 또한 항공-육상-해상의 연결을 위해 코르도바를 포함한 안달루시아 도시연합은 고속도로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즈니스 방문을 위해서는 다목적으로 지어진 시립빌딩을 4,000명 수용이 가능한 컨벤션 센터로 전환하기 위해 재정을 확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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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수내용◇ 천연 요새로 오랫동안 스페인의 수도였던 톨레도○ 스페인 중부 톨레도 주의 도시로 카스티야라만차 자치 구역에 해당된다. 인구는 8만4,000명이고 면적은 232㎢이며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약 67km거리에 있다.○ 세르반테스 언덕을 타구스 강의 협곡과 함께 세 면이 둘려싸여 있어 로마 시대부터 천연의 요새로 발전해 왔고 스페인 역사에서 오랫동안 수도 내지는 중심지 역할을 했던 도시다.▲ 톨레도 역사지구 전경[출처=브레인파크]○ 1085년 레온-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6세가 이슬람 왕국으로부터 톨레도를 탈환해 스페인 통일 왕국의 발판이 되었다. 이후 스페인 통일 왕국의 수도로서 정치,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지만 1561년 펠리페 2세가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김으로써 수도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그럼에도 도시의 경제 쇠퇴는 문화 및 건축 유산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오늘날이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인해 톨레도는 스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매년 수천 명의 방문객이 방문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공존하는 야외 박물관으로서 유네스코 등재○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유럽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로 꼽히며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유적이 공존하면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세 종교의 유적지가 모두 남아 있다.○ 로마 시대의 원형 극장, 중세 가톨릭 성당, 이슬람 왕궁 등 여러 문화의 유적이 공존하여 스페인 문화를 잘 대변하는 곳이어서 1940년 도시 전역이 국립 기념지로 선포되 었다.▲ 톨레도대성당[출처=브레인파크]○ 톨레도는 교회, 궁전, 요새, 사원 및 회당의 형태로 예술적,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고 있고 이러한 다양성은 카스티야 라 만차 수도의 구시가지를 실제 야외 박물관(톨레도 역사도시, Historic city of Toledo)으로 만들어 198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알카사르[출처=브레인파크]○ 톨레도는 철제 생산과 특별히 검 제작으로 유명하다. 여전히 시 중심부에는 칼과 철제 생산품을 생산하고 있다.○ 톨레도 대성당은 1226년에서 1493년 사이에 지어져 완공에만 266년이 걸린 고딕성당으로 로마의 부르주 대성당을 모델로 삼아 지어졌다. 대성당은 무데하르의 건축 특질도 반영하였다.○ 1000년 전에 지어진 알카사르(Alcazar)는 스페인어로 '성'이라는 뜻으로 레콩키스타 시기에 이슬람과 싸우기 위한 요새로 지어졌다. 톨레도의 알카사르는 스페인 전국에 있는 여러 알카사르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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