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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재영 전 여주시의원 [출처=복지국가소사이어티]◇ 조세저항을 조장하는 사회 '현금이용할 시 공기밥은 무료!' 가끔 지인들과 특별하지 않은 특별식을 위해 유명한(!) 식당에 발걸음을 하는 경우가 있다. 워낙 널리 알려져 있어 점심시간에 가게 되면 번호표를 받고 순서를 기다리게 되거나 바쁘면 다른 식당으로 발걸음을 해야할 정도다.그리 비싸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음식이기에 서민들의 발걸음이 특히나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인들과 반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다가 벽에 붙어있는 "현금 이용할 시 공기밥 무료!"라고 적혀있는 글귀를 보는 순간 머리끝이 뻣뻣해져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카드가 아니라 현금이면 5만이면 되는데" 나이가 들면 사회적 인간관계의 폭이 시나브로 좁아져감을 실감하게 된다. 직업전선에서 물러나기 전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의 변화를 확인하연서 곁에 일상적으로 만남을 유지해가는 이웃이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매주 일요이면 친구들과 '아침함께하기' 모임을 유지해 어쩌면 생의 마지막까지 남아있게 될 인관관계의 끈을 지속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물론 조찬식사비용은 돌아가면서 부담하게 되는데 어느 날 내가 식사비를 지불하려고 신용카드를 내밀자 "형님, 현금을 주시면 5만원이면 되는데 카드라서 6만 4천 원을 받겠습니다"라는 말에 정말 어이상실 그 자체였다.신용카드로 식사비를 지불하면서 정상적 세금납부를 기피하려는 생각이 곳곳에 뿌리내려 있음에 슬픔과 황당함이 짙어진다. ◇ 탈세를 권장하는 사회 20여 년 전 호구지책으로 '손해보험사업'을 시작해 12년 동안 보험전문가로 행세하며 보험사업을 생계유지의 한 방편으로 이용한 적이 있다.기초의원에 당선되어 의정활동에 집중하겠다는 생각과 의원이 지역유권자에게 보험가입을 권유하는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 보험사업을 접었다. 의정활동을 마치고 자연인으로 돌아와 축산인의 삶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중에 후배지인의 권유로 보험설계사 자격시험을 보게 되어 다시 보험사업을 아주 소극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보험사업에 발을 들여놓았으나, 과거처럼 생존을 위해 죽기살기로 영업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보험상품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얻고자 규칙적 보험상품교육에 참가하고 있다. 교육을 받으면서 보험상품에 지식이 풍부해짐에 감사해야 하지만 왜곡된 보험시장의 현실로 인해 일어나는 '가치충돌'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생명보험 상품 중에 종신보험이 있는데 고객을 유치하도록 정부가 탈세를 권장하고 있으니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이 자취를 감췄다. 주변에서 월 100만 이상의 보험료를 납부하는 종신보험을 계약하는 설계사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이 생겨나는 상황에 놀라움을 금치못하고 있다.마음 속으로 '참 부자들이 많다'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부자를 더욱 부자가 되게 하는 비과세 상품으로 인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종신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상황이다.종신보험을 권유하면 '죽어야 타는 보험'이라서 거부하던 사람들이 10년 비과세상품이라는 조건을 활용해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증여를 적극 활용하고 있고, 정부는 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 시간의 흐름에 비례해 증가하는 복지요구 2010년 지방선거에서 최초로 제기되어 진영갈등을 일으켰던 '무상급식(의무급식)'이 지금은 아주 당연한 제도로 뿌리를 내렸다. 무상급식을 시작으로 보육, 교육, 노후 등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복지의 폭이 점차 확대되어 오고 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현실화되고, 심지어 복지확대에 쌍지팡이를 짚고 반대하던 어르신들이 전적으로 세금에 의존하고 있는 기초연금의 확대에 쌍수를 들어 지지를 보내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며 격세지감을 확인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반복지'의 깃발을 휘날리고 싶겠지만 이미 뿌리를 내린 복지제도를 원천적으로 뽑아낼 수 없거니와 부분적 복지축소를 주도하지만 그 성공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특히나 군인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에는 '세금'을 지원하며 그 제도를 유지시키면서도 유일하게 국민연금만 온전히 국민들의 전적인 부담을 강요하면서 국민연금재정의 고갈을 들먹이며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연금재정을 어마무시하게 쌓아놓은 나라가 없거니와 국민연금을 정부가 주물럭거리는 나라도 없고, 재원고갈을 들먹여 국민을 협박하는 나라도 없다.머지않은 미래에 지혜로운 지도자들이 '용돈연금'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든든한 국민연금이 되도록 세금을 과감하게 지원하는 제도개혁을 기대해본다. 신생아출산률이 0.7%에 이르러 '국가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대한민국이라며 걱정을 키워가고 있다. 아이를 낳도록 이런저런 제도를 만들어 권장하지만 국민의 총체적 삶에 모두가 공감할 정도의 변화가 오지 않는 한 출산권장은 '소 귀에 경 읽기'가 될 뿐이다.아이가 행복한 나라, 부모가 행복한 나라, 누구나가 원하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나라, 좋은 일자리가 차고 넘치는 나라, 노후가 편안한 나라 등에 필요한 든든한 복지제도가 갖춰져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변화가 이뤄질 때 아이를 낳으라고 권장하지 않아도 신생아출산률이 세계최고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 조세형평성이 대한민국을 거듭나게 한다 생활은 돈이다. 마찬가지로 복지도 돈이다. 선거때만 되면 정치인들이 온갖 공약을 쏟아내지만 공약실현도 돈이다. 복지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함에도 부자감세를 통해 조세불평등을 굳건히 유지하는 우리나라이기에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이 유령처럼 활보하는 지도 모르겠다.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복지국가들을 한없이 부러워하면서도 그 나라들이 국민의 행복지수를 세계최고가 되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 지를 살펴보는 일에는 관심이 크지 않은 것같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세계최고의 청소년과 어르신 자살률, 세계최고의 노동시간, 세계최고의 어르신 빈곤률, 세계최저의 신생아출생률, 세계최고의 산업재해 사망률 등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사회의 온갖 불합리함과 부조리, 불평등을 해소해 삶의 질을 안정적으로 높이지 않고서는 제기되는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건전재정을 주창하며 복지재정확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구 약 1000만 명의 스웨덴과 인구 약 600만 명의 핀란드가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자리매김 되기 위해 쓰여지는 국가재정이 5200만 명 인구의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여야 할 정치지도자들이 본질을 호도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사람세상에서 사람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 불가능은 없다. 47%의 담세율을 유지하며 든든한 복지재정을 집행하는 북유럽복지국가와 20% 초반의 담세율을 고집하면서 건전재정을 주창하는 대한민국이 결코 같아질 수는 없다.부자감세와 재벌감세는 물론이고, 탈세, 절세, 과세특례, 불피요한 비과세 등등이 사라지고,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이 실현되어 국민의 행복구현을 위해 정부가 복지재정 확대를 적극 주도하는 날 대한민국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심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세정의실현을 통한 복지재정확대는 복지국가건설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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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2▲ 주요섭 생명운동가 [출처=복지국가소사이어티]‘문명전환’정치는 ‘정권교체’정치나 ‘정치전환’정치, 혹은 ‘체제전환’정치와 비교될 수 있다. 정권교체정치에게 진리는 현 정권의 퇴출이다.그러나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그것은 또 한 번의 정권교체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논외가 될 수밖에 없다. 정치전환정치는 정권이 아니라 정치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두 개의 거대정당 외에 다수의 공감을 얻고 있다. 정치전환을 주장하는 이들은 1987년 민주항쟁 이후 구축된 민주화세대와 비-민주화세대의 세대 구도, 영남과 호남의 지역 구도, 보수와 진보의 이념 구도에 의한 정치질서의 고착을 혁파해야 한다고 믿는다.체제전환정치 역시 정치전환을 이야기하지만, 완전히 결이 다르다. 이는 급진적 진보정치의 논리로써 기후급변과 극단화된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자본주의로 보고 그 철폐를 지향한다. ◇ 2024년, ‘문명전환정치’의 원년 문명전환정치 역시, ‘정치의 전환’을 고대한다. 체제전환정치의 문제의식에도 적지 않게 공감한다. 그러나 문명전환정치는 이들과 또 다르다. 문명전환정치는 생태적·사회적 파국의 근본 원인을 근대 서구문명으로 본다.그리고, ‘독립적이고 이성적인 개인’을 전제로 하는 근대 정치체계에 의문을 제기한다(물론, 왕정의 철폐와 평화로운 정권교체는 근대정치의 엄청난 성취이다) 문명전환의 관점에서, 2024년 총선과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3월 대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적 일정은 한국에서의 ‘문명전환 정치’의 출발점이다. 팬데믹과 기후재난,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의 참혹한 전쟁, 그리고 성큼 다가온 AI시대의 경험이 정치화되는 첫 번째 시기이기 때문이다.향후 몇 년은 서구적 근대문명 이후의 정치를 실험하고 경험하는 최초의 시간이 될 수 있다. ‘문명전환’ 및 ‘새로운 문명의 태동’이 정치적 소통의 주제로 등장하고, 문명전환을 표방하는 정치결사체가 나타날 수도 있다.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비-인간 존재의 정치를 제기하고, 근대적 원자적 민주주의를 넘어 깊은 마음의 민주주의를 주장할 수도 있다. ◇ ‘위기’의 징후가 아니라 ‘종말’의 징후 ‘전쟁 같은 삶’은 단순히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가속되는 전 지구적 기후재난과 유라시아와 중동에서의 살육과 전쟁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 이는 체계의 ‘자기파괴’로써 종말의 신호이다.서유럽과 일본 등 자본주의 선진국들의 제로성장 및 저성장과 트럼프 현상 및 정치적 무능력은 그 증거 중 하나일 뿐이다. 리셋(reset), ‘다시 개벽’ 아니고서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날 전지구적으로 경험하는 기후급변과 극단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 정치체계의 무능력은 ‘위기’의 징후가 아니라, ‘종말’의 징후이다.‘위기’는 체계의 ‘지속’이라는 관점에서 나온 개념이다. ‘종말’은 기존 체계의 ‘한계’를 지시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세상이 망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계 그 자체는 소멸될 수 없다.여기서 ‘종말’이란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동시에 새로운 ‘질서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들은 지배적 지위를 향해 치열하게 ‘경합’ 중이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위기론’이 아니라, ‘종말론‘이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었다. 그런데, 선진국이 되는 그 순간, 역설적으로 서유럽이 경험하는 정치체계 및 경제체계의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일부 일본 언론이 말하는 “대한민국은 지금 정점이고, 이제 내리막길밖에 없다”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론은 매우 타당한 주장이다.) 그런 맥락에서 문명전환정치의 관점은 이를테면, 체제전환정치의 탈성장론(de-growth)과 명백하게 다르다.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을 이미 저성장-제로성장시대에 진입했다.자본주의가 끝을 향해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만이 아니다. 단 미국만이 패권국가로써 예외적으로 성장 기조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이념적인 구호를 앞세운 ‘탈성장 체제전환론이 아니라, ‘포스트성장(post-growth)’의 관점에서 성장시대 이후의 새로운 경제형식의 태동과 작동을 관찰하고 발달시켜야 할 때이다. ◇ 새 문명들의 태동과 생명-문명의 염원 그렇다면, 문명전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역사를 통해 경험하듯이, 그것은 새로운 질서의 태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를 통한 ‘배치의 재-배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그러므로 무엇보다 삶-사회-문명의 ‘변이’들이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문명들은 이미 치열하게 ‘경합’하면서 동시에, ‘융합’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AI-로봇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변이들이다.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이미 우리는 포스트 근대문명시대를 살고 있다. 새로운 ‘문명들’이 태동하고 있다.(문명은 항상 문명들이다. 근대서구문명은 다만 지배적 문명이었을 뿐이다.) 우리가 관찰하는 하나의 문명적 변이가 생명-문명이다. 우리는 곳곳에서 ‘생명’을 중심가치로 하는 문명의 태동을 목격한다. 일본의 재난영화들의 생명사상과 테크노-애니미즘, 라틴 아메리카의 부엔 비비르'(Buen Vivir)와 다(多)-자연주의, 전 세계적인 샤머니즘 열풍 등이 그것들이다. 특히 일본이 주목된다. 복잡계이론에 ‘새로운 질서는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생겨난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테면, 기존 질서가 무너지는 현장에서 새로운 질서가 생겨난다는 말이다. 일본은 적절한 예가 되고 있다.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란 다시 말하면, 새로운 문명의 싹이 트는 시간이다. 문명전환의 관점에서 일본의 재앙은 축복이 될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30년의 저성장, 제로성장은 성장시대 이후 삶·사회의 형식을 발명하도록 강제하고 있다.후쿠시마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핵발전소 폭발사고와 같은 대재난은 일본사회의 탈-이념을 가속시키고, ‘생명’ 중심 사회들의 출현을 자극했다. 포스트 근대문명 사회의 미래를 일본의 지역사회와 애니메이션에서 발견한다. 한국에서도 ‘생명’을 키워드로 하는 문명의 변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최고의 자살율과 최저의 출생율은 ‘생명의 저항’의 징표다. “권력이 생명을 대상화할 때 생명은 레지스탕스가 된다.” 생명이 기존의 사회적 체계를 견딜 수 없다면, 떠날 수밖에 없다. 종말하는 옛 사회의 틈새에서 새로운 사회를 발명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한살림과 인드라망생명공동체와 같은 전통적인 생명운동만이 아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의는 2022년 ‘생명문명’을 선언했다. MBN의 대표적인 간판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의 장기흥행도 예사롭지 않다.9월 초 보은에서 열린 ‘동방마녀축제’와 11월 초 해남에서 열린 ‘대동굿’도 문명전환의 신호로 읽힌다. 전라북도는 2021년 이른바 ‘생태문명전환조례’를 통과시킨 바 있다.개발의 논리 속 보여주기식 입법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이른바 ‘좋은’ 일자리의 부재와 높은 진입장벽은 탈-정규직과 탈-직업을 강제한다. 이와 관련해 또 하나 의미심한 현상은 탈-사회화와 아나키적 ‘은둔’이다. 우리의 척도는 ‘생명’이다. (기존의 유기체적 생명 개념을 재구성하기 위해 ‘생/명’이라는 기호를 사용할 수 있다.) 이때 생명은 인간생명이나 유기체적 생명에 머물지 않는다. 신체적이면서도 거룩한 ‘물질/비물적’ 생명이며, 먹혀야 먹을 수 있는 ‘역설’의 생명이다.또한 살아나고 살아지고 사라지는 ‘순환’의 생명이다. 명철한 ‘이성’의 생명이면서 동시에, 감응하는 ‘정동’의 생명이다. 아름다운 감성의 생명이면서 동시에 무엇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공허의 생명이다. 생명의 문명은 생명감(生命感)과 생명관의 급진적 전환을 전제한다. ◇ 살림정치2.0: ‘그늘’을 정치화하기 오늘날 소통되고 있는 ‘생명정치’ 개념은 푸코와 아감벤 등과 같은 유럽의 철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들은 권력에 의한 인간생명의 훈육과 통제(푸코), 그리고 사회로부터의 배제(‘벌거벗은 생명’, 아감벤)를 다루었다.반면, 들뢰즈-가타리에 영향을 받은 자율주의와 정동이론의 ‘생명정치(삶정치)’는 인간생명 개념과 유기체 생명 개념을 넘어서 체계에 저항하는 생명의 잠재력에 주목한다.‘권력’의 생명정치에 맞서는 ‘생명’의 생명정치인 셈이다. 최근 신유물론의 생명정치는 인간 생명을 넘어서 인간 너머의 생명, 나아가 생명의 조건으로써 비-생명과의 관계에 주목하여, ‘사물정치(cosmopolitics)’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의 생명정치는 자율주의와 정동이론의 생명정치론과 신유물론의 사물정치 개념을 참고하면서, 동아시아적이고 한국적인 생명 사유에 주목한다.특히 1980년대 이후 김지하를 비롯한 한국 생명운동의 생명정치 담론에 유의하여, 살리고-죽이는 ‘역설’의 생명정치, 기쁨의 사건을 사회화하는 ‘신명’의 생명정치를 발명하고자 한다.나아가 인간/비인간, 생명/비생명의 경계를 넘나드는 우주생명 정치로의 확장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는 담대한 우주론과 새로운 인간관 및 문명론을 포함한 ‘다시개벽정치’로 연결된다. 우리는 ‘인간/비인간’, ‘생명/비생명’이 활기차고 신명나게 어울릴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생산하는 ‘생/명(生/命)’ 살림정치를 염원한다. ‘활생(活生)·활명(活命)’의 세상을 꿈꾼다.인간만의 ‘공동체’가 아닌, 비인간을 포함해 삶을 나누는 ‘공생체’로의 사회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은 ‘권력’이라는 매체를 통해 역동적으로 소통되고 생산될 수 있다.우리가 ‘권력’과 ‘정치’를 이야기하려는 이유이다. ‘탈성장사회’가 아니라, ‘포스트성장사회’를 강조하고, ‘고양이당’을 상상하고, ‘직업’이 아닌 ‘생업(生業)’의 일자리 패러다임을 실험하는 이유이다. ‘직접민주주의’와 함께 ‘깊은 민주주의(deep democracy)’를 논의하려는 이유이다. ‘개벽정치’의 서사를 창안하려는 이유이다. 생명-살림정치에도 나름의 역사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12년전 ‘살림정치’가 선포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2011년 10월의 일이었다. ‘살림정치여성행동’이 출범하였다.그해 12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이듬해 총선을 앞둔 상황이었다. 살림정치여성행동은 “민주주의와 성평등 그리고 생태 평화가 존중되는 생활정치, 살림정치의 가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살리는 정치’, ‘돌보는 정치’, ‘나누는 정치’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살림정치의 가치를 확산하는 살림포럼 운영과 후보인증 사업, 시민정치운동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살림정치는 오래가지 못했다.특정후보를 지지했고, 특정정당과 연계되면서 살림정치는 퇴색되었다. 그것은 시대적 한계이기도 했지만, 사상적 한계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인간 중심주의의 한계, ‘가치’ 중심정치의 한계였다.결정적으로 섬세한 ‘세계감(世界感)’과 담대한 ‘세계관(世界觀)’, 그리고 섬세하고도 담대하고 아름다운 ‘세계상(世界像)’의 부재라는 한계였다. 김지하의 ‘그늘’의 은유는 살림정치의 차원변화에 큰 영감을 준다. 2004년 김지하는 <생명과 평화의 길>이라는 단체를 창립하며, “그늘이 우주를 바꾼다”를 화두로 던진다. 우리는 그것을 “그늘이 문명을 바꾼다”, “그늘이 정치를 바꾼다”로 다시 읽는다. 이를테면 생명정치는, 살림정치2.0은, 이를테면, ‘그늘의 정치’다. 그늘진 몸과 마음에 유의하는 정치다. 이때 그늘은 ‘그림자’와 구별된다. 그늘은 ‘사각지대’와 다르다. ‘비가시적인 것’에 유의해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생명정치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 죽은 것, 죽음조자 부재한 것에 유의해야 한다. 살려내야 한다. 바이러스와 미생물과 균류들로부터 외계인과 우주의 암흑물질까지. 인적 없는 산중의 요양시설과 반지하의 세 모녀가 그들이다.가자지구의 지하동굴이 그들이다. 그러나 그늘이 고통의 그것만은 아니다. 깨알 같은 즐거움과 가을 하늘 같은 티없는 평화의 순간도 있다. 인간과 사회와 우주의 신산고초(辛酸苦楚)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어떻게 권력과 연결할 것인가? 어떻게 ‘그늘’을 정치화할 것인가? 어떻게 ‘흰 그늘’의 빛나는 신명(神命)의 순간을 정치화할 것인가? ◇ 어떻게 우리 자신을 정치적 사건으로 만들 것인가? 생명정치의 관점에서 2024년 총선의 전략적 목표는 기존의 정치적 구도, 특히 진보/보수, 좌파/우파의 구도를 흔들고 문명전환정치의 ‘틈새’를 만드는 것이다. 판을 흔들어 기존의 구도를 균열시키고, 새로운 가능성의 여백을 만들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전환정치 ‘연합’이 불가피하다. 이미 ‘정치전환’을 내세우는 수많은 정당과 정파들이 기존의 정치질서에 대항하기 위해 이른바 ‘제3지대’를 명분으로 연대와 연합을 공공연하게 내세우고 있다.생명정치도 여기에 함께 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명정치는 복수(複數)의 정치를 전제한다. 정치는 ‘정치들’이다. 수많은 전환정치들이 있다.진보정치와 보수정치를 비롯해, 젠더정치, 노동정치, 녹색정치, 디지털정치 등 수많은 정치들이 경합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택적으로 함께 할 수 있다. 기준은 ‘좌/우의 구도’에서 벗어나기, ‘진보/보수의 구도’ 흔들기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좌파/우파 정치적 구도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한국 역시 분단으로 인해 그 어느 나라보다 첨예한 좌파/우파의 구도 속에 존재한다.참혹한 전쟁으로 인해 실존적 이념적 피해의식이 깊이 각인되어 크다. 그리하여, 지금껏 공산주의를 공산주의라고 부르지 못하고, 좌파를 좌파라고 호명하지 못했다.이는 역설적으로 좌파/우파 구도를 넘어설 가능성을 증폭시킨다. 생명정치는 여기서 촉매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명정치는 그들 사이에 차별성과 그에 걸맞은 세(勢)를 실질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풀어 말하면, ‘주머니 속 송곳되기’.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생명정치도 정치체계라는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연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문명전환’정치는 ‘정권교체’정치’와 ‘정치전환’정치와 다르고, ‘체제전환’정치와도 구별된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합(合)만으로 차원변화를 이룰 수 없다.생명정치가 문명전환정치를 선도하며 ‘주머니 속 송곳’이 되기를 기대한다. 기존의 ‘평면적 구도’를 뚫고 돌출하는 ‘수직적 돌파’의 힘을 보여주기를 고대한다. 그리고, 새로운 정치적 구도의 발명을 열망한다. 그것은 기후재난시대의 라이프라인(life-line)과 같은 실제적이면서도, ‘초월적 돌파’의 힘을 가진 정동적이고 영성적인 격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생명-미학적’이고 정치적인 탁월한 기예(技藝)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주머니 속 송곳 되기처럼, 우리는 스스로 정치체계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심금(心琴)을 울리는 만파식적(萬波息笛)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2024년 봄, 어떻게 우리 자신을 ‘정치적 사건’으로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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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2▲ 윤호창 상임이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출처=복지국가소사이어티]‘행복’은 인류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철학도, 정치도, 경제도 결국 개개인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에피쿠르스나 제레미 벤담처럼 행복을 자기 철학의 주요 화두로 가져간 철학자들은 많았지만, 행복은 주관적 요소가 강해 사회정책이나 국가운영의 철학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 많았다.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적 성장과 번영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킬 것이라는 전제하에 시장경제를 전면화시켰지만, 대다수 개인들의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경제적인 성장과 물질적인 번영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의 행복감은 증진되지 않았고 오히려 풍요속의 빈곤과 불행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에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느낀 국가에서는 ‘행복’을 주요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시민들의 행복을 측정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개발해왔다.금세기에 들어 이런 활동은 더욱 활성화되었고, 2012년부터는 UN에서도 3월 20일을 ‘세계 행복의 날’을 정하고, 전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국가별 행복순위를 평가해 발표하고 있다. 이제 10년을 넘긴 국가별 행복도 조사에서 언제나 1,2등을 다툰 나라는 덴마크와 핀란드였다.덴마크와 핀란드가 각각 5번씩 1위를 차지했고, 덴마크와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 5개국(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는 항상 10위안에 랭크되었다. 대한민국은 거의 60위 안팎으로 중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 북유럽이 행복사회가 된 까닭은? 지난 10년간의 검증활동을 통해 보편적 복지국가가 시민들을 행복의 길로 이끄는 지름길임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북유럽이 복지국가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다양한 분석과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1921년부터 76년까지 4년을 제외하고 50년 이상을 연속 집권한 스웨덴 사민당의 역할을 꼽지 않을 수 없다.스웨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 사회의 시스템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세대 이상 일관된 노력을 보여야만 안정적인 궤도에 오를 수 있다.스웨덴 사민당의 성공적인 활동이 이웃 북유럽 국가들에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 북유럽 복지국가 모형인 노르딕 모델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촛불시민혁명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의 단명은 두고두고 역사의 회한으로 남을 것 같다. 87년의 6공화국 체제가 만들어진 이후, 보수와 개혁의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사회는 분열되고 국력은 소진해가고 있다.국가의 비전,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이 사라진 오늘날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 사회는 급속하게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이후에 20년·30년집권을 운운했지만, 준비도 실력도 자세도 되어 있지 않았다. 북유럽의 노르딕 모델을 만든 것은 스웨덴 사민당과 탁월한 정치가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수 백년간 북유럽에 흐르고 있던 문화가 있었기에 사실 가능한 일이었다.저변에 흐르는 문화적 코드를 읽지 못한다면 우리는 북유럽 읽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북유럽의 문화코드를 읽기 위해서는 덴마크에서 출발한 그룬트비의 민중교육사상과 사회적 실천으로 나타난 협동조합을 봐야 한다. 덴마크가 독일과의 전쟁에서 유틀란드 반도의 영토를 잃고 약소국으로 전락하자, 그룬트비는 덴마크 사회와 교육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지적했다. 소수의 엘리트를 지향하는 귀족적이고 허구적인 교육이 아니라, 민중의 삶에 기초한 실제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을 주장하고 평민들의 연대와 협력으로 만들어가는 협동조합의 활성화를 제안했다.당시 위기의식에 놓여 있었던 덴마크 사회는 이에 호응했고 인근의 북유럽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오늘 북유럽을 만든 보다 근원적인 힘은 평민교육과 협동조합에 있다고 볼 수 있다.물론 역사를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공평한 분배를 강조했던 바이킹의 문화와 신과의 직접적인 소통과 대화를 강조했던 루터교가 북유럽에 자리잡은 것도 한몫 했다.이런 역사적인, 문화적인 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을 20세기 노르웨이 작가 악셀 산데모세는 ‘얀테의 법칙’이라는 말로 북유럽의 평민문화를 설명했다. 얀테의 법칙은 다음과 같다. 1.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2. 당신이 남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3.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4. 당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5. 당신이 남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6. 당신이 남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7. 당신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8. 남들을 비웃지 마라.9. 누군가 당신을 걱정하리라 생각하지 마라.10. 남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라 얀테의 법칙이 말하는 ‘자유로운 개인, 평등한 만인’을 지향하는 문화가 저변에 흐르고 있었기에 다른 나라와는 달리 사회민주주의, 보편적 복지국가가 튼튼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크게 흔들림이 없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만명의 자유 vs 만인의 자유 북유럽 모델을 많은 이들이 선망하지만, 한국 사회에 쉽게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역사문화와 정치경제적 환경들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수입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수입 자체를 완강하게 저항하는 세력들이 많기도 하지만. 우리는 북유럽 모델을 참고하면서 우리 토양에 맞는 실질적인 모델을 실험하고 확대해 나가야 한다. 지난주에 수능이 끝났지만 한국사회를 망칠 주범으로 교육을 꼽는 이들이 많다. 현재와 같은 교육시스템으로는 지금이나 다가올 미래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기는 어렵다.흔히 한국의 교육을 19세기 교육관료들이, 20세기 학교에서,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한다. 전면적인 전환이 없이는 우물안 개구리들만 키우거나, 알지도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가는 열탕 속 개구리 꼴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정치가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는 것도 마찬가가지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관심이 많은, 기존의 대의제로 선출된 권력엘리트들에게 담대한 미래 비젼과 깨끗한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 백년하청에 가깝다.비단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엘리트 대의권력의 해악은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극우 파시즘이 부상하는 것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와 정치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한국사회의 정치는 해악 정도가 좀더 심할 뿐이다.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나 아일랜드의 시민의회가 같은 정치실험이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과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사회가 제대로 된 혁신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만명만 자유롭고, 만인은 불행한 사회’로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대통령은 말만 하면 수십 번씩 자유를 언급하고 많은 이들이 비판하지만, 필자는 그의 자유론을 별로 의심하지 않는다. 그의 패밀리들이 속한 만명의 자유론이기 때무이다.개인으로서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만, 한 국가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대통령으로서는 차마 가져야 할 자유론이 아니다. 대통령은 만명이 아닌 만인의 자유를 염두에 두고 비젼을 제시하고, 국가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 우리사회가 시도해야 할 것들 – 마을대학, 지역정당, 시민의회 북유럽의 복지국가를 만든 힘은 소수의 정치엘리트가 아니라, 평민학교·민중학교에서 교육받은 이들이 협동조합 등을 통해 보통의 시민들이 만들어간 것이라 봐야 한다.물론 타게 엘란데르, 올로프 팔메 같은 탁월한 정치가들이 화룡점정의 역할을 했지만, 위대한 평민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북유럽은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평민들은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 ‘행여나’ 해서 기대하지만, ‘역시나’ 하는 행태를 수 십 년간 되풀이 해왔다. 대통령도, 좌우파를 막론하고 선출된 대부분의 정치인들도 언제나 역시나였다.북유럽을 통해 배울 핵심적인 것은 얀테의 문화 속에 스며있는 ‘자유로운 개인, 평등한 만인’의 정신과 보통의 시민들이 이를 실천하고 만들어가려는 노력이다. 마을대학협동조합,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지역정당네트워크, 전국민회와 같은 뜻있는 개인, 단체들이 ‘마을대학, 지역정당, 시민의회’란 화두로 걸고 풀뿌리 지역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기대할 만한 것이 없거나 마음 둘 만한 곳이 없는 이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부터 시작해볼 만한 일이다. 왜냐면 복지국가, 행복사회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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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2▲ 백혜숙 전)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 [출처=복지국가소사이어티]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의 후퇴를 불러일으킨다. 신자유주의는 정부 개입 및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여 복지 제도와 정책을 축소시켜 불평등 및 사회적 격차의 확대, 공공영역의 복지시스템 중단 등 다양한 국가적 문제를 유발한다.따라서 신자유주의는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야기하고 사회불안을 일으킨다.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을 이룩한 부유한 나라이지만, 올해 발표된 한국의 행복지수는 전 세계 137개 국가 가운데 57위, OECD 국가 중 꼴찌에서 4번째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한마디로 ‘성공한 나라 우울한 국민’으로 고착되는 듯하다. ◇ 복지국가 후퇴 유발하는 신자유주의 정부 세입 기반 확충을 위해 노력해야 할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집권하자마자 대규모 감세정책에 집중했다. 2024년 국세 감면액은 국세 수입 총액의 16.3%인 77조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또한 조세 부담률을 2022년 23%대에서 20%대로 줄이고 있다. 건전재정이라는 미명하에 윤석열 정부는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방기하며 세금도 줄이고 재정지출도 축소하는 무책임 재정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의 가장 큰 역할은 민생과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지출을 통해 경제를 살리고, 조세정책으로 공정하게 세금을 걷어 소득재분배를 하는 것이다.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2017년)에 따르면, 소득재분배(시장소득 지니계수-가처분소득 지니계수) 정도가 개선되면 경제성장률도 함께 오른다. 구체적으로, 소득재분배 정도가 1포인트 개선되면 경제성장률이 0.10%포인트 정도 상승한다고 했다. 한국 조세 경쟁력은 OECD 38개 국가 중 23위로 하위 수준이고, 노인 인구 1천만 시대에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 중 1위를 달성했다.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건전재정이란 프레임을 앞세워 뒤로는 부자 감세와 정부 역할을 축소하는 한편, 민생과 복지예산을 줄이며 불평등 완화를 위한 복지영역을 후퇴시키고 있다.투명한 데이터에 기초하여 공정하게 적정세금을 부담시키고 이를 보편적 복지에 지출하는 게 건전재정 정책 아니겠나. 그런 정책을 펼쳐야 우리 사회의 불평등 및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다. 이러한 공정세금-보편복지 정책은 기후위기, 사회불안, 식량안보, 저출생, 고령화 등의 국가 현안을 해소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된다. ◇ 불평등과 양극화는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최악의 수출 부진으로 올해 경제성장률은 1.4%로 곤두박질쳐 경제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몰려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재정 적자 가구가 작년보다 82만 가구나 증가했다. 최하위 저소득층 20% 가구 중 적자 가구 비중이 62.3%로, 5.1%포인트나 급증했다. 분배 격차가 심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푸는 해법은 소득재분배와 복지안전망의 확충에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불평등과 양극화로 인한 사회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한다.정부는 지난여름 서현역 칼부림 사건 이후 살인 예고와 흉기 난동 등에 대응한답시고 경찰특공대와 장갑차를 곳곳에 배치했다. 서현역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무차별 살인을 저지른 범인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하지만 왜 우리 사회에 이렇듯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등장했을까? 왜 세기말적 불안과 공포가 싹튼 것인가. 진지하게 들여다보자. 사회가 건강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병리 현상 아닌가.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할수록 사회불안 요소가 독버섯처럼 자라게 된다. 경찰특공대와 장갑차의 출현은 공포를 조장한다.이런 행태는 육상 보관이라는 해법이 있음에도, 후쿠시마 원전 핵오염수의 해양투기를 강행한 일본의 짓거리와 닮았다. 핵 기지국이 되려는 일본의 시나리오처럼 공멸의 길로 가는 위험을 대량 생산하는 짓과 하등 다른 게 없다. 우리 편이냐 아니냐, 편 가르기 신냉전체제에서 사회불안을 더욱 가중시키는 게 윤석열 정부다. 실패한 외교정책의 후과가 심히 우려된다. 동맹과 경제를 분리해야 함에도 동맹과 경제를 하나로 묶어버렸다.한・미・일 동맹을 한・미・일 경제화시킨 것이다. 수출 주도의 경제 구조가 고착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내 편 네 편이 어떻게 수출 경제를 뒷받침하겠는가. 편 가름은 질곡으로 작용할 뿐이다.게다가 기후위기가 일상화되었다. 기상이변이 재난으로 닥쳐 국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국가 경제가 추락하여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는 형편이다.저성장 흐름이 지속되어 민생의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는 마당에 시대와 역사에 거침없이 역행하는 게 윤석열 정부다. 기형적으로 잘못 태어난 신자유주의 윤석열 정권은 한・미・일 동맹에 기대어 호가호위하며 유유자적하고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2022년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2021년 기준으로 소득 상위 10%의 부자가 자산의 58.5%, 소득의 45%를 차지하고 있고, 하위 50%는 자산을 5.6%만 가지고 있다.또한 탄소 배출에 있어서도 2019년 기준으로 상위 10%가 54.5톤을 배출할 때 하위 50%는 6.6톤을 배출하는 매우 불평등한 구조를 보인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서 상위 10%는 하위 50%의 삶을 알고 있을까?얼마 전 한덕수 국무총리는 4,800원인 서울시 택시 기본요금을 “1.000원쯤 되지 않았냐”고 해서 뭇사람을 ‘웃프게’ 만들었다. 불평등은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게 하므로 서로 소통하지 않게 되고 서로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결국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망가뜨린다. 불평등과 양극화는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한겨레경제연구원이 주관한 제14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불평등의 대가, 누가 더 큰 비용을 지불하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기조세션3 강연에서 미국 유씨(UC) 버클리대 가브리엘 쥐크만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소수에게 집중된 소득과 부의 힘은 정치적 힘의 집중을 의미하며 소득과 부가 커질수록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예산 배분과 정책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도 커지므로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원칙까지 훼손할 수 있다.소득과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었다는 것은 다수에게 공평하지 못한 성장을 한 것이며 다수의 몫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또한 불평등은 혁신의 동력을 약화시키고 분배 및 조세정책 실패로 커진 불평등은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공공재 확충 등 공적 투자를 어렵게 만든다. ◇ 다중위기 시대, 대량 생산되는 위험 인류와 지구에 대한 명백한 범죄인 후쿠시마 원전 핵오염수 해양투기는 인간이 만들어 낸 위기, 즉 ‘생산된 위험’으로 진화하고 있다.2022년 원전 오염수의 장기간 추적조사가 필요하다는 질병관리청의 연구보고서, 2023년 원전 오염수가 생태계에 위협이 된다는 해양수산부 연구보고서는 정책에 반영되고 있지 않다.2023년 10월 5일 시작된 2차 해양투기에서 삼중수소 농도가 검출 하한치보다 4번이나 높게 나왔는데, 일본은 문제없다며 11월 2일 3차 해양투기를 강행했다. 해양환경 및 생태계의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고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는 위험은 대량 생산될 것이다. 일본은 후쿠시마산 식품 수출을 위한 돌파구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를 활용하고 있다. CPTPP 핵심 국가는 일본이다. 완전 개방에 가까운 CPTPP 회원국 평균 관세 철폐율은 약 96%로, 다른 자유무역협정에 비해 높다.2023년 3월, CPTPP 12번째 회원국인 영국은 유럽연합(EU)을 탈퇴한 뒤 독자적인 무역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해법으로 CPTPP를 선택했다. 그래서 후쿠시마 등 9개 현의 식품에 대해 방사성 물질 검사를 의무화했던 수입 규제를 6월 말에 철폐했다.대만은 2021년 9월 CPTPP 가입을 신청했고, 2022년 2월에 후쿠시마를 포함한 5개 현의 식품 수입을 허용했다. 우리나라는 곡물자급률이 20% 이하로 떨어진 상황에서 CPTPP 가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장기화, 주요 곡물 생산국의 기상악화나 기상이변 등으로 인해 국제 곡물 가격은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지표 ‘엥겔지수’는 국민소득이 증가하면 낮아지기 마련인데, 우리는 오히려 올라가고 있다.국제곡물가 상승, 경기침체, 최저임금 인상 등의 요인으로 식료품 가격이 올랐고, 실직자들이 늘어나 엥겔지수가 높아졌다. 2022년 기준, 소득 상위 20% 가구는 식료품비 지출이 전체 지출액 대비 12% 이하인데 반해, 소득 하위 20% 가구는 식료품에 21.4%를 지출했다. 향후 엥겔지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고유가, 고금리 정책 등으로 더욱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 시대 철학은 생태적 복지국가다 생태적이란 생물이 살아가는 생활 상태와 관련 있는 것을 말하며, 복지는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생태도시는 사람과 자연(환경)이 조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도시를 말한다. 공간적인 측면에서 도시를 국가로 확장하면, 환경친화적인 사회복지 시스템이 작동되는 국가를 생태적 복지국가로 이해할 수 있다.또한 세계적인 글로컬라이제이션 흐름, 국내 저성장 경제 구조가 장기화하는 국내외 정세에 적절히 대응하는 한편, 기후위기・식량위기 등을 반영한 생물 지역 거버넌스(인간만이 아니라 지역 생태계를 책임지는 통치)를 실현하는 복지국가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유엔농민권리선언」 중에서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생태・친환경농업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받을 권리를 농민이 누릴 수 있도록 사회보장 시스템이 운영되는 국가가 생태적 복지국가다.농민이 공익적인 농사 활동으로 창출한 가치를 인정하고, 농민이 창출한 가치만큼 보상을 하는 것이다. 스위스의 국민 대부분은 농촌 유지, 안전한 먹거리 생산, 생태환경 보전 등 국토 및 농산물 가치를 높이는 농민에게는 경제적 보상이 뒤따라야 하고, 농민 삶의 질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스위스 농업정책은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발굴하고 장려하기 위한 인센티브 개발과 제도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생태적 복지국가에서 도시라는 공간, 그리고 도시민이라는 사람에 대한 복지는 농촌 공간 및 농민과 연결되고 확장되어 나타난다. 공공의료에 이은 공공식료(食療) 시스템으로 농민의 권리 및 도시민의 먹거리 기본권 보장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먹거리로 농민 복지와 도시민 복지를 연결하는 공공식료 시스템 관리통합 플랫폼이 구축되고, 가락시장을 포함한 전국 33개 공영도매시장은 농민의 가격 결정권을 존중하여 계약재배된 식재료를 공급하는 물류 허브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복지 재원은 우선 총량부터 부족하다. 복지 예산과 지출 자체가 적은 것이다. 그럼 어떻게 생태적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까? 탄소를 줄인 만큼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탄소 화폐를 도입하면 된다. 농촌에서는 경축순환농업체계를 마을 단위로 구축한다. 공동자원화 설비를 갖추고 축산 분뇨를 퇴비 액비로 만들어 경종 농가에 지원하고, 경종 농가는 이를 조사료 재배에 사용하고, 재배된 조사료는 다시 축산농가에 지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참여한 농가에는 탄소 배출권을 지급한다. 공공에서는 생산・유통・소비의 전 부문을 아우르는 농업(생태) 분야 전문 탄소 거래 시장을 설치한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자 하는 기업은 이곳에서 탄소 배출권을 구매할 수 있고, 스위스처럼 농민과 농촌에 탄소 배당을 할 수 있게 된다. 도시에서는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한 농산물의 접근성을 강화해 먹거리 기본권이 보장되는 생산자-소비자 직거래 및 지역 내 직거래 유통 체계가 활성화된다. 이런 사례로 대표적인 것이 ‘공동체 지원 농업(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이다.농민이 지속가능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소비자(공동체)가 농산물의 대가를 미리 지급하고 수확기에 농산물을 받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탄소 화폐가 지급된다. 도시와 농촌은 다시 농업과 복지가 결합된 ‘케어 팜(Care Farm)’으로 이어진다. 케어 팜은 사회적 돌봄을 농장에서 실현하는 치유 농업 형태의 복지 시스템이다. 네덜란드의 케어 팜은 여러 기관(정부, 판매처, 복지기관, 의료기관, 지역공동체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촘촘한 시스템 덕분에 탄탄하게 운영된다. 탄소 화폐를 매개로 생산-유통-소비-폐기-치유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공공식료 시스템은 생태적 복지국가의 초석이다.‘국가는 국민의 집’이어야 한다는 철학 아래 세계적 복지국가로 자리매김한 스웨덴처럼 굶는 사람이 없도록, 누구나 맘 편히 건강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도록 국가가 국민의 밥상을 보장하는 것이 공공식료 시스템의 핵심이다.국민 밥상을 책임지는 공공식료 시스템이 작동되는 생태적 복지국가는 기후위기・식량위기의 시대 철학을 반영한 국가 경영전략이다. 국민과 함께 미래를 그리는 선도적 국가경영 전문가는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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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7▲ 김 대석 평화인권센터 선임연구원 [출처=복지국가소사이어티]헤겔은 역사는 단계별 발전과정을 거치며 마치 한 사람의 생이 나고 성장하며 늙어가는 과정과 같다고 하였다. 아울러 그는 관념론적 사관에서 역사는 이성의 지배를 따르며 자유라는 목적지를 향해 점진적으로 진보한다고 보았다. 믿을 뻔 했다. 아니 지금도 사고의 밑바탕에는 이 말에 대하여 여전히 신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양극화된 계급사회의 고착화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귀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이미 챗지피티라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은 3.0, 3.5버전에 이어서 4.0버전을 지나 어디까지 나아갈지 예측불가이다.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이러한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산성이 비례적으로 향상되면 유토피아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것인가.그럴 리는 없다. 이는 제2차 산업혁명에 따른 석유문명의 가속화시대와 제3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정보혁명 시대를 거쳐 오면서 사회적 격차 문제의 경향을 보자.즉 기술의 폭발적 발전에 따른 사회적 과실 분배로 빈부의 격차와, 새로운 계급의 고착화·세습 문제가 얼마나 극복 되었는지를 돌아보면 알 수 있다. 1차 산업혁명기의 빈부격차가 10:90에 가까웠다고 한다.반면 2차 산업혁명기에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병폐인 경제공황과 두 번의 세계대전 그리고 동·서 이념대립에도 불구하고 서구사회의 복지정책 확대와 평등을 향한 노력으로 20:80 정도였다고 한다. 수치적으로 보면 빈부의 격차가 완화되고 있는 같아 역사는 정으로 발전 하겠구나 하는 착각을 갖게 한다.한편 1991년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뜻밖에 해체되면서 동구권 전체가 그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를 두고 서방은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싸움에서 자본주의가 최종 승리한 것으로 자평하며 의기양양했다.그러나 이에 대해서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였던 ‘크리스 하먼’은 ‘1991년 소련 붕괴는 사회주의의 몰락을 뜻하는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종류의 자본주의가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로 전환된 “게 걸음”이었을 뿐’이라고 일갈 했다.여하간 동구권의 몰락은 서방의 ‘신자유주의’ 사조의 등장을 촉발하였고, 이와 더불어 정보혁명이라는 제3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게 된 글로벌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라는 깃발아래 세계를 다시 재구조화 하였다.그런데 문제는 신자유주의적 글로벌자본주의 물결이 휘졌고 지나간 사회에서는 중산층의 급격한 몰락과 복지의 축소라는 공통된 상흔이 남게 되었다는 점이다.이 상흔들을 통해서 우리는 기술의 발전이 역사의 정의로운 발전으로 진전될 것이라는 희망은 여지없이 좌초되었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제4차 산업혁명을 논하기 전에 우선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글로벌자본주의 폐해 극복을 고민해야 한다.그렇지 않을 경우 제4차 산업혁명기의 사회에서는 단 1%의 가진 자(부와 권력)가 99%의 가지지 못한 자를 오롯이 통제·지배하는 것을 보게 될 수도 있다.왜냐하면 AI(인공지능)를 통해 더 효과적이고 정교한 지배와 통제의 방법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진 자의 숫자는 작을수록 그들의 파이는 커지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를 그렇게 구조화 하려고 할 것이다.우리 사회는 제4차 산업혁명의 본류에 진입도 하기 전에 1%대 99% 사회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진단이다. 즉 상속받을 유산이 없는 사람이 순전히 개인의 노력과 힘으로 신분상승을 이룩하기는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말하자면 우리 사회가 이미 급격하게 세습계급의 사회로 진입하였다는 것이다.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는 K-POP으로 유명세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그런데 놀라운 일은 ‘강남’만의 스타일이 현재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강남’에는 아무나 진입할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 이 장벽은 한국의 1% 사람들이 만들고 있고 우리 사회 신분 사다리의 최상부에서 철옹성이 되어 있다.즉 이 장벽의 카르텔에 신규회원이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치 경제 문화의 각 분야에서 기득권을 가진 1% 그들은 서로 얽히고설켜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기득권에 의한 모든 특권은 교육을 통해 그들의 자녀와 그 자녀의 자녀들에게로 고스란히 되 물림하기에 여념이 없다.2022년도 서울대 정시 등록자 중 강남3구(강남/송파/서초) 출신이 22.1%로 양극화와 쏠림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기사가 이를 방증하는 일례로 볼 수 있다.특히 전국 의대 정시 등록자 가운데 강남3구 출신 비중이 2022년 기준으로 22.7%에 달하는데, 강남3구의 고교생 주는 전국의 3.2%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다.성골과 진골, 양반상놈의 신분을 구분하고 계급을 나누는 것은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 역사의 유물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지금도 우리는 1%의 강남과 99%의 비강남이라는 신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계급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심지어 이 계급은 사실상 세습까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 한 신분사회에서 가지지 못한 99%의 계급은 일상의 삶이 고단하기 이를 데 없다.세계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기상이변, 물부족, 식량부족, 지구온난화, 지하수고갈 등의 환경문제 등으로 발생하는 모든 고통은 오롯이 이 99%의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문제는 이와 같은 ‘1%의 사람들’인 기득권 집단이 가지는 계급적 성격이 점점 공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그대로 방치하면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의 중요한 특징인 탈계급과 탈신분세습의 원리는 변질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왜냐하면 계급주의의 극복의 역사가 이른바 자본주의 발전의 과정이었고, 탈계급주의는 탈세습신분과 궤를 같이 했기 때문이다.◇ 극우 정부가 가져온 퇴행들우리는 이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완화에 관심을 가진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진영의 정부를 3번 경험했다. 그 중 두 번의 정부는 앞선 극우정부의 파탄지경의 국정난맥상을 넘겨받아 뒷수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김대중, 노무현 중도우파 정부를 이어 집권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극우인사들은 두 번의 중도 우파 정부 동안을 잃어버린 통한의 10년으로 규정하였다.그들은 절치부심하며 재탈환한 정권에서 그 기간 동안 하지 못한 사욕을 채우기라고 하듯 온갖 악행을 대놓고 자행했다. ‘4대강 살리기’라는 기만적 선전을 통한 토건세력의 배불리기, 국정원 선거 개입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사건, 세월호 참사 축소 은폐시도 등 제동장치가 고장난 폭주 열차가 되어 치달았다.이와 같이 집권의 목적이 오직 사적 이익추구의 극대화에 있던 극우 보수의 두 번에 걸친 집권과 그들의 본말이 뒤바뀐 국정운영은 시민들 삶의 직접적 붕괴 요인이 되었다.청년실업의 증가, 비정규직 확대, 중산층의 붕괴, 빈부격차의 심화, 2014년 30대 여성이 어린자녀들과 동반자살 한 사건처럼 생활고에 따른 비관자살의 다발적 발생 등 무능하고 부패한 집권세력이 초래한 재앙적 사회를 두고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로 자조하게 되었다.권력의 일탈적 오남용 문제도 심각한 지경이었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2월부터 2015년 9월까지 2년여 사이 검찰수사를 받던 피의자 중에 46명이 자살을 했다.이 수치는 2005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피의자 자살건수 100건 중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2년 동안 발생한 피의자 자살건수가 10년 전체 자살건수의 절반에 해당한다.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경찰과 검찰, 국정원 그리고 또 하나의 권력기관인 기레기라 매도되고 있는 우리 언론은 철저하게 권력에 복종하였다. 그들은 조직과 개인의 사적영달에 충실히 복무하면서 집권세력의 무능과 부패를 옹위하는 전위 조직으로서의 모든 역량을 솥아 부었다.결국 이러한 무능과 부패의 극우적 보수 집권세력은 들불처럼 일어난 촛불민심에 의하여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수백만이 광장에서 부패척결과 국가적 재난에 대한 책임자처벌을 통한 민주주의의 복원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저항에 투항한 것이다.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촛불민심의 요구를 등에 업고 다시 집권하게 된 세 번째 중도 우파 민주정부는 결과적으로 촛불민심의 기대를 허무하게 날려버렸다는 것이다.그 결과 민주정부는 좌초되었고 수구적 과거 세력이 재집권하면서 그들의 파렴치한 준동은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파괴적이다.◇ 위기의 대한민국, 시민은 무엇을 할 것인가?재집권에 성공한 수구 보수 세력은 이 번 기회에 자신들만이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확고히 뿔리 내리려는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이와 같은 수구적 극우보수 세력의 안하무인격 파렴치한 준동 앞에서 우리는 87년 체제의 형식적 민주주의의 허약한 체질을 시리도록 경험하고 있다.대화와 타협을 통한 공론화를 말하면 빨갱이로 몰아가는 수구 보수 세력은 언제나 존재했다. 다만 민주정부의 구성원들은 그들을 다루는 방법을 몰랐고 ‘엄중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 결과는 그나마 믿고 있던 87년 체제의 민주주의 체제마저도 뿌리 채 뽑혀질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지금은 엄중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 사태를 직시하자. 그리고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할 뿐이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자.권력의 지배양식은 그 사회의 환경을 반영할 뿐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민주적 합리성에 기반 한 권력이 국가를 경영하는 정부의 정착을 위하여 필요한 제도와 원칙에 대하여 치밀하게 고민하자.그리고 우리가 정말 원하는 민주복지국가의 모습과 역할에 대하 상을 명확하게 그리자. 이제 더 이상 성장과 경제제일주의가 삶 자체의 목적이 아님을 알아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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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7▲ 신용인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처=복지국가소사이어티]1. 신호탄을 쏘다 광복절인 8월 15일 오후 3시 3분 K-나눔의 성지인 청량리 다일공동체 2층 갈릴리 홀에서 <진영논리 극복과 상생사회 실현을 위한 일천인 선언>(이하 ‘선언’이라고 함)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날 행사는 조현주 도산애기애타회 공동대표의 사회로 진행된다. 오프닝 연주로 시작되고, 다일공동체 대표인 최일도 목사가 인사말을 한 후 선언문 낭독으로 이어진다.선언문은 어린이, 청년, 장년, 시니어, 여성 등 7인이 함께 낭독한다. 이어 선언 이후에 이어질 활동 계획이 발표되고, 10인의 선언 공동대표들이 우리 사회를 향한 상생의 메시지를 한 마디씩 전한다.행사는 참석자들이 함께 부르는 합창으로 마무리된다. 이날 선언으로 우리 사회에서 진영논리 극복과 상생사회 실현을 위한 신호탄이 쏴 올려지는 것이다. 선언에 대한 구상은 올해 3월 초 ‘씨ᄋᆞᆯ네트워크’’에서 나왔다. ‘씨ᄋᆞᆯ네트워크’’는 주민자치 인문학 강좌와 ‘씨ᄋᆞᆯ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주민자치 인문학 공부 모임이다.함께 공부하는 회원들 사이에서는 망국병인 진영논리가 이대로 격화된다면 우리 사회가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는 우려가 매우 컸다.하지만 우리가 애쓴다고 세상이 바뀌겠느냐는 자조가 있었고, 괜스레 진영논리 극복을 말하다가 박쥐 취급받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었다. 그래도 침묵은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점차 공유되기 시작했다.그러면서 비록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치더라도 뭔가 꿈틀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에 누군가가 선언문 초안을 작성하자 뜻있는 회원들끼리 의기투합하여 선언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3월 15일 ‘진영논리 극복 TF 팀’을 꾸려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막상 일을 벌이고 나니 얼마 되지 못하는 TF 팀원만으로 일천인 선언자를 모으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각자 오십 명씩 모아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우선 TF 팀원 각자 일대일 추천 형식으로 공동제안자 100명을 모은 다음 그 100명의 공동제안자 이름으로 공개적으로 일천인 선언자를 모집하기로 했다.처음에 정했던 선언 이름은 <진영논리 극복을 위한 일천인 선언>이었다. 하지만 뒤늦게 참여한 공동제안자 중에서 선언 이름이 부정적인 뉘앙스만 강조하여 불편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이에 선언 이름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논의가 이뤄졌다.무려 11개의 이름 후보가 제시되었는데 4월 21일 공동제안자 사이버 투표를 통해 현재의 선언 이름이 채택되었다. 또한 공동대표를 세울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다수가 공감하자 종교계ㆍ학계·시민사회계 등에서 10인의 공동대표가 추대되었다.추대된 공동대표 10인은 도법스님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상임대표), 호인수 신부 (천주교 인천 교구 사제), 최일도 목사 (다일공동체 대표), 문향허 교무 (나 살림 마음 일기 대표), 노태구 (동학민족 통일회 상임의장),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장), 안성호 (전 한국 행정 연구원장), 조현주 (도산애기애타회 공동대표), 조인래 (삼균학회 이사장), 민인홍 (대종교 총본사 전리)이다.6월13일 회의에서 선언문 일부 수정 및 비준 절차를 밟았고, 6월 25일 서울 흥사단 4층 세미나실에서 공동제안자 첫 대면회의를 가지고 공동제안자 115명 이름으로 sns 등을 통해 일천인 선언자 공개모집을 시작했고, 8월 10일 선언 참여자가 1,000명을 넘었다. 한편 공동대표인 도법스님이 실무팀장과의 대화 자리에서 진영논리를 격화시키는 사회 현안에 대해 상생의 관점에서 합리적이고 건강한 대안을 제시할 필요성을 말했고, 그 말이 계기가 되어 7월 13일 상생의 소리 팀이 구성되었다.이어 7월 26일 상생의 소리 팀 주관으로 “후쿠시마 오염수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115인 공동제안자 내부 토론회가 열렸고, 그때 나온 의견을 취합하여 8월 3일 공동대표 10인의 이름으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의 바람직한 해결을 위한 공개 제안을 했다.공개 제안의 요지는 오염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영논리 극복과 인류애의 관점에서 시민 안전을 목표로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 대한민국의 자화상, 엘리트 제국 우리 헌법은 제1조 제1항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실상을 보면 정말 민주공화국인지 의문이 든다.그보다는 자본주의와 능력주의를 숭배하며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엘리트 제국을 철옹성같이 쌓고 있는 나라 아닐까? <한국 능력주의>의 저자 박권일 작가 말대로 모두가 강남 아파트와 서울대를 열망하며 무한 질주하는 바람에 99% 이상의 사람들이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의 자화상 아닐까?그로 인해 지금 대한민국에는 빈부격차의 심화, 학벌주의와 입시지옥, 저출산ㆍ고령화, 노동 양극화, 양성 갈등, 지방 소멸 등 여러 사회문제가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이처럼 엘리트 제국에서 기인하는 산적한 사회문제는 정치가 풀어야 한다. 여야는 물론 모든 국민이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며 제대로 된 해법을 찾는 정치적 과정이 필요하다.하지만 여야 정치권은 진영논리에 빠져 사생결단의 적대 정치를 벌이며 상대를 악마화하는 데 여념이 없다. 상당수 국민조차 진영논리의 환상에 사로잡혀 서로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퍼부으며 준내전 상태로 분열되어 나라가 두 쪽 날 지경에 이르렀다.이처럼 정치가 작동 불능 상태에 이르게 되자 산적한 사회문제는 사실상 방치되거나 자본과 기술관료의 논리에 의해 처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실이 이러다 보니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르며 절망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과 출생률을 보면 그 말이 실감 난다.우리나라 자살률은 1990년대에는 인구 10만 명당 10명 수준에 머물렀으나 이후 계속 치솟아 2014년에는 자살률이 10만 명당 29.1명까지 올라갔고, 2021년 기준으로도 28.6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다.출생률도 계속 떨어져 2022년에는 0.78명을 기록했다. 출생률은 OECD 국가 중 20년 동안 부동의 꼴찌를 고수하고 있다. ‘자살률 일등! 출생률 꼴찌!’ 이보다 헬조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통계지표가 있을까? 가장 죽고 싶은 나라, 가장 태어나기 싫은 나라, 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3. 선언의 진단과 처방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엘리트 제국의 막을 내리고 국민 누구나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참된 민주공화국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그래서 여야는 물론 모든 국민이 어떻게 하면 엘리트 제국을 극복하고 참된 민주공화국을 만들 수 있는지 치열하고 토론하고 소통하는 정치적 과정이 있어야 한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정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올바른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이제 선언이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처방을 제시하는지 보자. 먼저 진단을 보면, 선언은 우리 정치를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든 가장 큰 원인으로 진영논리를 꼽는다. 진영논리 때문에 정치적 양극화와 대결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나아가 진영논리가 이대로 격화된다면 민주주의를 집어삼키는 파시즘이 등장해 우리 사회가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고 본다.파시즘은 민주주의의 골수에 잠복해 있고 민주주의 면역체계가 약화되면 바이러스처럼 증식하는 속성이 있는데 진영논리는 민주주의 면역체계를 파괴하는 대표적인 악성 독소라는 것이다.따라서 만연한 진영논리를 극복하여 파시즘의 마수로부터 민주주의를 구해내야 하고, 나아가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상생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다음으로 처방을 보면, 선언은 자기성찰 수행, 통합사관 정립, 화합정치 실현이라는 3대 실천과제를 제시한다. 자기성찰 수행은 개인적 차원의 처방이다. 진영논리 극복과 상생사회 실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진영과 진영논리는 다르다.우리는 혼자 살지 않는 한 불가피하게 어느 한 진영에 속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합리성을 지녔기에 진영논리를 넘어설 수 있다.진영논리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이 속한 진영의 이념만 옳고 대립하는 진영의 이념은 그르다는 논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자기성찰을 통해 진영논리를 극복할 수 있다면 다른 진영에 대한 증오와 혐오, 악마화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을 자각하게 된다면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몸에 익을 것이다. 통합사관 정립은 역사관 차원의 처방이다. 모든 역사관은 엄밀히 말하면 환상이고 편견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역사관은 없다.그럼에도 통합사관 정립을 제시하는 까닭은 만연한 진영논리의 이면에는 좌편향 혹은 우편향 역사관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예컨대 대한민국은 미국의 식민지에 불과하다고 보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해전사 사관과 같은 좌편향 사관이나 경제성장에 과도한 비중을 두고 일제와 분단, 독재를 미화시키는 뉴라이트 사관과 같은 우편향 사관으로 국민 통합을 할 수 있을까?국민 통합을 위해서는 최소한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관이 필요하다. 이에 선언은 그러한 사관으로 동학농민혁명과 독립협회 운동에서 비롯되어 3ㆍ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사의 흐름에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찾는 통합사관을 제시한다. 화합정치 실현은 제도적 차원의 처방이다. 세계적인 비교정치학자 아렌드 레이프하트는 민주주의 유형을 대결 모델과 화합 모델로 나누고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 36개국을 비교 분석한 결과 화합 모델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점을 실증했다.선언은 우리나라의 정치체제를 고도의 중앙집권체제, 제왕적 대통령제, 거대 양당 중심제 등을 특징으로 하는 대결정치체제로 보고, 풀뿌리자치, 연방적 지방분권제, 직접민주제, 실질적 다당제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정치개혁을 단행하여 권력의 분산과 공생을 통한 화합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3가지 실천과제는 마치 동학의 3대 개벽을 연상케 한다. 동학은 3대 개벽으로 정신개벽, 민족개벽, 사회개벽을 말하는데 자기성찰 수행은 정신개벽에, 통합사관 정립은 민족개벽에, 화합정치 실현은 사회개벽에 각각 상응한다. 4. 향후 활동 계획 앞서 본 바와 같이 8월 15일 선언식 때는 선언 이후 활동 계획도 발표될 예정이다. 그 계획은 크게 상생 일꾼 양성, 상생의 소리 활동, 지역별 상생사회네트워크 구성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상생 일꾼 양성을 보면, 상생이음세미나와 ‘‘씨ᄋᆞᆯ네트워크’공부방을 운영할 계획이다. 상생이음세미나는 진영논리 극복과 상생사회 실현의 철학적 토대를 성찰하고 3대 실천과제의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9월부터 약 1년 동안 격주 1회 공개강좌 형태로 개최될 예정이다.‘‘씨ᄋᆞᆯ공부방은 기존의 ‘씨ᄋᆞᆯ네트워크’ ‘씨ᄋᆞᆯ’공부방을 그대로 계승하여 3대 실천과제를 주제로 zoom을 통해 소규모 단위로 운영하고자 한다. 장기적으로는 상생 일꾼의 체계적인 양성을 위해 가칭 ‘상생 일꾼 대학’ 설립도 추진할 계획이다. 둘째, 상생의 소리 활동을 보면, 진영논리를 격화시키는 사회 현안에 대해 상생의 관점에서 토론회 개최, 성명서 및 기자회견 등의 방법을 통해 합리적이고 건강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상생의 소리는 이미 후쿠시마 오염수 갈등 내부 토론회를 개최하고, 오염수 해법을 윤 대통령에 공개 제안한 바 있다. 장기적으로는 상생의 소리를 미디어 사회적 협동조합 형태로 발전시키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셋째, 지역별 상생사회네트워크를 보면, 서울 지역부터 가칭 ‘상생사회서울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가능한 지역(시도 또는 시군구) 별로 진영논리 극복 및 상생사회 실현을 위해 3대 실천과제를 수행하는 시민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자 한다.장기적으로는 읍면동 단위에서도 상생마을네트워크가 구성되어 마을 주민과 함께 진영논리 극복과 상생마을 실현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자 한다. 5. 그래도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굳게 연대하여 3대 실천과제를 실천하며 진영논리 극복과 상생사회 실현을 위한 운동을 전국 방방곡곡에서 펼친다면 정치가 제대로 작동되면서 엘리트 제국을 극복하고 참된 민주공화국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하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과연 우리에게 그럴 능력이 있는지 회의가 든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지난 3월 진영논리 극복의 깃발을 올릴 때보다 진영논리가 더욱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대통령이 진영논리 격화에 앞장서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미명하에 야당과 진보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가며 절멸을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과연 진영논리 극복과 상생사회 실현 운동이 성공할 수 있을까? 솔직히 상황은 비관적이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진영논리 극복과 상생사회 실현의 길 말고는 엘리트 제국을 극복하고 참된 민주공화국을 만들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은 절망적 희망을 노래했다. 나 또한 비록 상황은 비관적이지만 희망을 노래한다. 인간은 스스로 자각하든 못하든 누구나 선한 의지를 마음에 품고 있다.그 선한 의지의 힘을 믿고 희망 없는 곳에서 희망을 찾는다. 이제 성경 말씀 한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21) <진영논리 극복과 상생 사회 실현을 위한 일천인 선언> 지금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정치적 양극화와 대결정치가 기승을 부리며 극우ㆍ극좌 선동과 권위주의적 독재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역시 진영논리가 활개를 치며 정치적 양극화와 국민분열이 심상치 않습니다. 정치권은 사생결단의 적대정치를 벌이고 있고, 국민은 준내전 상태로 분열되어 나라가 두 동강 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밖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있습니다. 진영논리가 이대로 격화한다면 우리 사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의 시대로 빠져듭니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를 집어삼키는 파시즘이 등장해 우리 사회가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파시즘은 민주주의의 골수에 잠복해 있으며 민주주의의 면역체계가 약화되면 바이러스처럼 증식합니다. 진영논리는 민주주의의 면역체계를 파괴하는 대표적인 악성 독소입니다. 이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진영논리를 시급히 극복하여 파시즘의 마수로부터 민주주의를 구해내야 합니다. 나아가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서로를 살리는 상생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깨어 있는 씨ᄋᆞᆯ(국민)이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사항을 실천하는 진영논리 극복과 상생사회 실현 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하나, 우리 각자가 자기성찰을 해야 합니다. 진영논리의 내면에는 비뚤어진 공감에서 생겨나는 혐오가 있습니다. 자기 진영에 대한 과잉 공감이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를 불러옵니다.하지만 사람은 하늘처럼 존엄한 존재이므로 결코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자기성찰을 통해 사람은 사람을 혐오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둘, 통합적인 역사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진영논리를 극복하고 국민을 통합하려면 좌 편향 혹은 우 편향의 역사관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과 독립협회 운동에서 비롯되어 3ㆍ1운동 - 대한민국 임시정부 -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사의 흐름에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찾고,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북아 평화공동체를 지향하는 역사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셋, 대결정치를 화합정치로 바꿔야 합니다. 대결정치의 제도적 원인은 권력의 집중과 독점에 있습니다. 고도의 중앙집권 체제, 제왕적 대통령제, 거대 양당 중심제 등 승자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탓에 대결정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따라서 풀뿌리자치, 연방적 지방분권제, 직접민주제, 실질적 다당제 등을 제도화하는 정치개혁을 단행하여 권력의 분산과 공생을 통한 화합정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이에 우리는 서로를 죽이는 진영논리를 극복하고 서로를 살리는 상생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하나, 정파를 초월하여 뜻을 같이하는 모든 정당ㆍ정치인ㆍ단체ㆍ시민과 연대하여 진영논리 극복과 상생사회 실현을 위한 운동을 펼친다. 하나, 마을(읍면동)에서는 마을 주민과 함께 진영논리 극복과 상생마을 실현을 위한 운동을 펼친다. 하나, 각자는 자기 삶의 현장에서 자기성찰 수행, 통합사관 정립, 화합정치 실현을 실천한다. 진영논리 극복과 상생사회 실현을 위한 일천인 선언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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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철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ESG위원장 [출처=복지국가소사이어티]지난달 28일 14명의 사망자를 낸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 지하차도 침수 사고에 대한 국무조정실의 감찰 결과가 발표됐다.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충청북도, 충북경찰청, 청주시, 충북소방본부 등 관계 기관이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어느 기관도 이를 위한 사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무조정실은 지하차도 참사와 관련, 공무원 등 38명을 수사 의뢰했다. 재해 상황 전파, 교통통제 등을 소홀히 한 관련 공무원 63명은 징계하라고 요구했다.도무지 믿기가 어려운 이태원 참사에 이어 또다시 재난 대비 관리 감독 시스템 콘트롤 타워의 부재와 무책임한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해 서울이 115년 만의 폭우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뒤에 윤석열 정부가 재난 대비를 강화하겠다는 다짐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많은 사상자를 낳은 재난이 발생했다”고, 하였고, 블룸버그 통신 역시 “한국은 매년 여름 폭우로 고통받고 있으며, 자연재해로 해마다 수십 명이 사망한다”고 보도했다.가수 ‘싸이’의 노래로 유명해진 ‘강남 물바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이어 ‘오송 지하차도’ 참사 현장까지 전 세계에 생중계되면서 ‘재난 공화국’이라는 국제적인 망신을 초래한 것이다. 오송 대형 참사는 지난달 15일 오전 8시 9분 청주시 오송역 인근 지하차도 미호천교 부근에 쌓여 있던 임시제방이 붕괴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하천수 6만여t이 밀려들어 시내버스 등 차량 17대가 물에 잠겼고 2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폭우로 불어난 미호강 물이 임시제방 너머로 넘쳤고, 제방 붕괴 18분 뒤인 8시 27분부터 지하차도로 쏟아져 들어갔다. 8시 35분에 지하차도 내부는 차량 주행이 불가능해졌고, 8시 40분에 지하차도가 완전히 잠겼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3일 청주지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참사는 부실한 임시 제방을 설치하고 붕괴위험에도 비상 상황에 대응하지 않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관리주체이자 교통통제 권한을 가진 재난 컨트롤 타워로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충청북도, 미호강 범람위기 상황을 인지하고도 방치한 청주시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을 중대재해처벌법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달 17일 오전 11시 기준 이번 계속된 집중호우로 인한 중부·남부지방에 사망자가 40명(세종 1명, 충북 16명, 충남 4명, 경북 19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전문가들은 이번 중부·남부지방 집중호우가 최근의 기후변화와 관련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제 폭우와 폭염, 가뭄과 같은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더 자주 더 많이 우리에게 닥쳐올 것이다. ◇ “향후 10년의 기후 행동이 온난화 제한을 결정한다” 지난 3월 20일 외교부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제6차 평가보고서 종합보고서를 승인한 공동보도자료를 배포하였다.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3월 13일부터 3월 19일까지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개최한 제58차 총회에서 통합적인 단기 기후 행동의 시급성을 강조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 The Sixth Assessment Report) 종합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승인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IPCC 제6차 평가 주기(2015~2023년) 동안 발간된 3개 특별보고서와 3개 평가보고서(WG, Working Group)의 핵심 내용을 통합적 관점에서 서술함으로써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 영향 및 적응, 완화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종합보고서는 기후변화의 관측된 증거와 인간에 의해 유발된 기후변화의 역사적·현재 요인과 영향 및 현재 시행된 적응·완화 반응을 평가하는 A) 현황 및 추세가 있다.미래 사회경제 발전상에 따른 2100년까지의 기후변화에 대한 평가 결과를 제시한 B) 장기 기후변화, 리스크 및 대응, 지속가능발전을 향한 적응 행동과 완화 행동을 통합한 기후 탄력적 개발(climate resilient development) 경로의 중요성을 적시하고, 단기(2040년까지)에 적응과 완화 행동 옵션들을 평가하고 이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C) 단기 대응 등 3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표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 The Sixth Assessment Report)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을 통한 인간 활동은 전 지구 지표 온도를 1850~1900년 대비 현재(2011~2020년) 1.1℃로 상승시켰으며, 과거와 현재 모두 전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의 지역, 국가, 및 개인에 따른 기여도는 균등하지 않다.”고 지적햤다.“인류는 1850년에서 2019년까지 총 누적탄소 배출량은 2400±240 GtCO2 정도를 배출했고, 2019년 전체 온실가스의 연간 배출은 2010년 대비 12% 증가한 59±6.6 GtCO2-eq이다.”고 하였다. ◇ 기후변화 적응의 불평등도 심화 보고서는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높은 상위 10% 가구는 34~45%의 소비 기반 온실가스 배출, 하위 50%는 13~15%의 소비 기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고 발표했다. 기후변화가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후 불평등도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기후변화 적응의 불평등을 언급했다. 기후변화 적응(adaptation)의 경우, “온실가스 증가를 포함하여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이 증가하여 더 불평등한 결과 또는 복지 감소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주로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나타내는 오적응(maladaptation)의 증거가 모든 부문과 지역별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적응을 위한 전 지구 금융 흐름은 개도국의 적응 옵션을 이행하는 데 부족하다.”고 지적하였다. 2100년까지의 기후변화에 대한 평가 결과를 제시하면서, “지속되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온난화가 심화되어 거의 모든 시나리오에서 가까운 미래(2021~2040년)에 1.5℃에 도달할 것”이라고 하였다.“전 지구 지표온도의 상승을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해수면 상승이나 남극 빙상 붕괴, 생물다양성의 손실 등 일부 변화들은 불가피하거나 되돌이킬 수 없으며 온난화가 심화될수록 급격하거나 비가역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심각한 경고를 하였다. 또한 온난화가 심화되면서, “손실과 피해는 증가할 것이며 더 많은 인간과 자연 시스템이 적응(adaptation)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고 이미 기후 위기가 닥쳐왔음을 알리면서 이를 극복하는 적응 방법으로써 “오적응(maladaptation)은 유연하고 다양한 분야와 넓은 범위에서 장기적인 계획의 수립과 이행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 기후 재난 피해는 불평등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피해는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에게는 더 가혹한 재난으로 이어진다. 코로나19에도 그랬듯이 기후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기후 위기로 삶의 터전이나 목숨을 잃는 이들은 선진국보다는 더욱 큰 피해를 입는 저개발국의 취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022년 2월 28일 IPCC가 발표한 보고서 “기후변화: 인간의 웰빙과 지구의 건강에 대한 위협”에서 과학자들은 “대처 능력이 가장 약한 사람과 생태계가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IPCC는 증가하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폭염, 가뭄 및 홍수의 증가는 이미 식물과 동물의 허용 기준을 초과하여 나무와 산호와 같은 종의 대량 사망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또한 ”이러한 기상이변은 동시에 발생하여 관리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계단식 영향을 유발하고, 특히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작은 섬, 북극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극심한 식량과 물 부족에 노출시켰다.”면서, “생명, 생물다양성 및 기반 시설의 손실이 증가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야심 차고 가속화된 행동과 동시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빠르고 크게 줄여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지금까지 적응에 대한 진전은 고르지 않으며 취해진 조치와 증가하는 위험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것 사이에서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격차는 저소득 인구에서 가장 크다.”고 기후 재난의 불평등을 지적했다. 같은 날 환경부가 발표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기후변화 영향 및 적응에 관한 제6차 평가보고서(AR6, WG2) 승인’ 자료에서는 5차 평가보고서(2014년) 이후 기후변화로 인한 물 안보, 빈곤, 건강 등 전 지구적 영향이 심화된 것으로 분석하고, 기후변화 리스크 모니터링과 평가에 기반한 ‘기후 탄력적 개발’ 등 과학적․ 통합적인 적응계획 실행이 시급함을 강조하였다. ◇ 기후 재난 불평등 원인과 책임은? 기후 재난 원인은 지구온난화이고, 이를 가져온 탄소 배출은 선진국과 거대기업 및 화석연료 투자자들이 제공한 것임은 분명하다.그러나 재난 피해는 정반대로 저개발국과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가장 크게 입는 불평등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탄소 배출은 소득분배와 마찬가지로 국가적으로 불평등하고 국가 내에서도 불평등하다. 세계 불평등 데이터베이스(WID: WORLD INEQUALITY DATABASE)에 따르면, 상위 10% 개인 탄소발자국 점유율이 1인당 탄소 배출량은 73t이었는데 하위 50%는 9.7t이었다.한국은 2019년 1인당 평균 배출량이 15t인데 상위 10%는 55t, 상위 1%는 180t에 달했다. 반면 중위 40%는 15t, 하위 50%는 7t에 불과했다. 따라서 전체 배출량 중 상위 10%가 약 3분의 1을, 상위 1%는 13%를 차지했다. 최근 변화를 보면 1990년에서 2019년까지 탄소배출량 증가의 21%를 상위 1%가 차지했고, 하위 50%는 16%를 차지했다. 특히 1990년 이후 탄소배출량이 세계적으로 1인당 평균 7% 증가했지만, 불평등 심화와 함께 상위 1%의 배출량은 26%나 증가했다.여러 선진국 내에서 하위 50%의 배출량은 오히려 감소했다. 기후변화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기후변화 대응의 부담도 부자 나라와 탄소 배출원이 더 많이 져야 할 것이다.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기후변화 대응이 미흡해 ‘기후 악당’ 국가로도 불린다. 기후 재난은 재난 대응력이 취약하고, 재난 시스템의 관리, 감독이 안이하고 무책임한 한 곳을 가장 먼저 덮치고 있다.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하고 책임이 큰 투자자나 기업들에게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부담을 더 크게 지우는 일은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기후변화와 기후 불평등, 재난 대비 관리 감독 시스템의 완결 등에 맞서는 정의로운 ‘기후 정의’가 우리 모두의 시민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기후악당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나려면 중앙 정부를 비롯한 책임있는 이들의 노력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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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주요섭 (사)밝은마을_생명사상연구소 대표 [출처=복지국가소사이어티]한 여름 땡볕 아래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동료 교사들의 눈물이 아프다. 아들과 가족을 잃고 통곡하는 기후재난의 현장이 고통스럽다.정치문제 이전, 기후문제 이전 우리의 신체가 반응한다. ‘나’의 몸이 신음한다.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그러나, ‘정치’적 비상시국 이전에, ‘생명’의 비상시국이다. ◇ ‘생명’ 비상시국 이때 생명이란 무엇보다 ‘삶아있는 몸-마음’이다. 지금 여기 우리의 ‘몸-마음’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는 오늘의 현실을 우울감으로, 좌절감으로, 열패감으로, 허기로 체험한다. 생명의 문제감각은 ‘저쪽’이 아니라 ‘이쪽’에 있다. ‘나’로부터 출발한다. 이때 ‘나’는 초월적 주체로서의 ‘자아’가 아니다. ‘나’로 지칭된 생물학적이고 심리적이면서 또한 사회적인 것의 복합체로서의 인간이다.그러나, 이때의 ‘나’는 무엇보다 살아나고 살아가고 사라지는 ’생명의 나’이다. ‘살아있는 몸-마음’이다. 배고프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고, 소멸의 공포를 느끼는 ‘생명의 나’이다.기쁨을 나누고 마음을 열고 환대하며, 또한 환희하고 열반하는 ‘생명의 나’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욕망하고, 포기하고, 또한 저항하는 ‘생명의 나’이기도 하다. ‘생명의 나’를 자각하고 나면 외부가 다르게 느껴진다. ‘생명의 나’의 외부는 물질세계이기도 하고, 사회세계이기도 하고, 생태계이기도 하지만, 이제 세계는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세계’로 경험된다. 외부는 ‘타자(他者)’가 아니라 ‘타아(他我)’가 된다.그/그들은 대상으로서의 타자가 아니라, 마음을 지닌 또 다른 ‘생명의 나’가 된다. 고양이의 눈빛이 정겹고, 먼지로 뒤덮인 길가의 화초들이 애처롭다. (감정이입만이 아니다)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웃들과 회사의 동료들이 사회적 역할이나 직책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으로 경험된다. 그의 희로애락의 감정적 변화가 예사롭지 않고, 상처받기 쉽고 늙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요컨대, 사회적인 것 아래,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는’ 생명세계의 실존이 체험된다. 그렇다. 생명사상의 관점에서 오늘날 가장 절박한 문제는 ‘생명’ 문제다. 팬데믹과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생태적 재난은 객관적인 사실에 머물지 않는다. 이미 ‘생명’의 문제가 되었다.이제 생태문제는 인간을 비롯한 생명공동체(공생체)의 절멸과 죽임과 고통의 문제이다. 그리고 죽임과 고통의 현실은 두려움과 우울의 ‘정동(情動)’을 격발한다. 어떤 이는 그것을 ‘파국시대의 정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와 세계를 ‘대전환기’라고 말하는 것은 기존의 질서와 체계(시스템)가 생명의 지속과 번영을 지지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이다.자원수탈 및 생산력의 무한성장에 기반한 기존의 경제시스템은 제로성장과 저성장으로 이미 한계를 드러냈고, 대의민주주의에 기반한 정치시스템도 ‘진영화’된 이해집단과 생명-생태문제 등에 효과적으로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무한 경쟁과 무한 능력주의의 직업시스템과 교육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을 포함한 근대적 의미세계 전체가 ‘시스템 종식’의 위기에 처한 것인지도 모른다.이른바 ‘근대문명의 종말’이 그것이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나타내는 한국사회는 근대문명의 반생명성과 시스템적 한계의 치명적인 증거가 되고 있다. ◇ 정치의 최종심급은 ‘생명의 몸-마음’이다 생명사상의 관점에서, 우리는 ‘정치공동체’ 이전에 ‘생명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다. 우리에게 정치의 최종심급은 ‘생명’이다. 아파하고, 슬퍼하고, 외로워하는 ‘몸-마음’이다.비상품적 인간관계에 허기지고, 공생체(共生體)를 열망하는 ‘살아있는 몸-마음’이다. 정치의 최종심급은 우리가 가끔 ‘영성’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아름답고도 거룩한 ‘생명의 마음’이다. 그런데, 생명정치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먼저 ‘생명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이 요구된다. 요점은 이렇다.(일반적인 생명권력이론과 다르게) 생명사상의 관점에서는 권력이 (인간)생명을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생명 스스로 자신을 길들인다는 것이다.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들이 그렇듯이 생명의 훈육은 항상 ‘자기훈육’이고, 그것은 ‘생존의 기술’인 것이다. ‘타자복종’이 아니라, ‘자기복종’인 것이다. (‘자율’이라고 말해도 좋다.)복종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더 잘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여기서 복종은 ‘인격적 복종’이 아니라, ‘결정에의 복종’이다. 코로나 백신도 그렇고, 학교도 그렇고, 주민등록도 그렇다.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국가가 생명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이 사회적 층위에서 국가를 생성해낸 것이다. 그러나, 권력이 생명을 과도하게 길들이려 한다면 저항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권력이 생명을 대상화할 때, 생명은 레지스탕스가 된다.”(들뢰즈) 기존의 시스템을 전북하고, 또 다른 ‘자기복종 형식’을 발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생명사상의 관점에서 모든 정치는 ‘생명정치’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다양한 정치적 ‘코드’로 표현된다. ‘경제성장/경제침체’이라는 코드, ‘민주/반민주’라는 코드, ‘정의/부정의’라는 코드가 그것들이다. 생명정치는 ‘경제성장’ 정치, ‘부국강병’ 정치와 다른 길을 지향한다. 한국경제를 비롯한 자본주의 선진국은 이미 포스트 성장시대에 진입했다. 저성장, 제로성장을 피할 수 없다.억지 경제성장 드라이브는 지금까지의 성과마저도 무너뜨릴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극단화되는 ‘부국강병’의 정치를 목격하고 있다. 한계상황의 돌파구를 기대하고 있겠지만, 생명정치의 관점에서 그 결과는 전쟁과 파멸일 수밖에 없다. 생명정치는 무엇보다 ‘이념정치’와 구별된다. 부연하면, (좌파든 우파든) ‘정치적 올바름’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도덕(선악)정치’, ‘진리정치’와 대별(大別)된다.이념정치, 도덕정치, 진리정치의 입장에서는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렸기 때문에, 상대방의 ‘청산’과 ‘척결’을 정치의 목표로 삼게 된다. 생명정치는 ‘(적폐)청산정치’와 ‘(좌파)척결정치’와 같은 배타적 진리정치에 동의할 수 없다.이들은 국민의 적대감을 양산하면서 자신을 확대 재생산한다. 특히, 한국 진보의 경우, 진리정치 과잉이 역설적으로 진리정치의 이른 종말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그런 맥락에서 오늘날 목격되는 ‘가짜/진짜’ 정쟁은 ‘진리정치’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징후로 읽힌다.) 또한, 생명정치는 ‘환경정치’ 및 ‘생태정치’와 비교될 수 있다. 환경정치와 생태정치가 인간과 사회의 조건으로써 객관적 생태계에 주목한다면, 생명정치는 인간생명을 비롯한 생명의 내면과 마음의 흐름에 주목한다.예컨대, 기후변화는 인류의 종말을 위협하는 ‘생태학적 사실’이 분명하지만, 그에 대한 대응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기후우울’이 시사하듯은 기후문제는 이미 ‘생명의 마음’의 문제이다. 이런 맥락에서 생명정치는 기존의 구별 도식을 뛰어넘는 도약적 차원변화를 기대한다. ‘초월적 돌파’를 고대한다. 생명운동의 핵심 논리 중 하나인 ‘이변비중(離邊非中)’의 차원변화가 그것이다.이변비중은 원효의 말로, 직역하면 “양 끝을 떠나되 중간도 아니다”라는 뜻이다. 핵심은 ‘중간’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중간(中間)’과 중도(中道)는 구별되어야 한다. 진보/보수의 중간, 좌/우의 중간이 아니라, 좌/우, 진보/보수의 구도 자체를 점프해 새로운 구도를 발명해야 하는 것이다. ◇ ’구공존이(求空存異)‘, 생명정치의 원리 생명정치의 원리는 ’구공존이(求空存異)‘다. 그것은 ’구동존이(求同存異)‘와 구별된다. ’구공존이‘의 관점에서는 ‘세계의 원초적 공허함’이 강조된다. 진영들의 척도는 일시적이고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공(空)’을 구하고 ‘차이(異)’을 인정한다는 것은 현재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차이의 생성 가능성을 의미한다.‘공허의 지대’는 ‘비구별의 상태’로 ‘생기(生氣)’적 사건의 장이며 ‘정동적’ 사건의 장이다. 생성과 창조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공’을 구하되 ‘차이’를 생산하지 않으면 생명체는 살 수가 없고, 사회는 자기생산을 할 수 없다. 구별하고 비교하지 않으면 문명사회는 불가능하다. 구공존이를 생명정치에 적용하면, 두 가지 측면이 강조된다. 하나는 ‘무지(無知)의 정치’다. 이를테면, ‘확실성의 정치’에서 ‘무지의 정치’로서의 전환이다. 이때 ‘무지’란, 물론 ‘무지의 지’를 말한다.다시 말하면, ‘맹점의 자각’이다. ‘볼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없는’ 삶-사회의 조건에 대한 깨달음이다. 진영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영의 맹점을 인정하면서, 연찬(硏鑽)과 향연(饗宴)을 통해 풍요로운 ‘협력/경합’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도 접근할 수 있다. 생명정치의 관점에서는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문제가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 아니라, 문제가 없음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전 지구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지질학적 훼손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일본 어민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당신들은 바다를 모른다.” (이는 기후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무지의 기후-생태학’이 요구된다.) 그러나, ‘구공존이’의 ‘공’은 인지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다. 이를테면 그것은 존재론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궁한 잠재력으로서의 공(空)의 역능에 유의한다.‘공’의 생성능력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시킨다. ‘공’이라는 ‘미지의 지대’이자 ‘비구별의 지대’는 허무의 끝이 아니라, 풍요의 원천이다. 영점장(零點場)과 같은 무한에너지의 현장인 것이다. ‘구공존이’의 존이(存異)는 다(多)맥락적 사회, 다(多)세계적 세계를 의미한다. 정치적으로 말하면, 다진영적 정치, 다당제적 정치라고 말할 수도 있다.예컨대, 생명정치는 생명문제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알고 있지만, 디지털기술 문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해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존이’는 타자로 인식된 진영들과의 협력을 강제한다. 구공존이의 생명명치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정치의 전환’을 실험할 수 있다. 정치체계를 포함해 사회적 체계의 핵심이 소통(communication)이라는 전제하에서, 첫째, 정치적 소통의 ‘주제’를 ‘투기 경제’에서 ‘삶-생명’으로 전환시키는 것, 둘째, 정치적 소통의 ‘방법’을 ‘이성적 판단’에서 ‘생명의 마음’으로 전환하는 것이 그것이다. ◇ 정치적 소통 ‘주제’의 전환 : ‘투기경제’에서 ‘삶-생명’으로 지금까지의 정치적 소통의 핵심 주제는 ‘경제’였다. 정확히 말하면, (‘살림살이경제’와 구별되는) ’투기경제‘, 혹은 ’부자되기경제‘였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경제적 자본으로써 ‘능력’이었다.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것은 삶-생명을 갈아 넣어야만 가능한 반생명적인 ‘악마적 거래’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생명의 관점에서, 이제 우리의 정치적 소통의 주제는 ‘주식’이나 ‘부동산’, ‘코인’이 아니다. 투기 ‘능력’이 아니다. ‘삶-생명’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고, ‘생명으로서의 나’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때 ‘삶’이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이다. 지난 생애의 삶이 투기적 삶이었다면, 이번 생애는 ‘아름다운 삶’, ‘건강한 삶’. ‘멋진 삶’이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 정치적 소통 주제가 된다.‘자신의 환상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 것인가?’, ‘노년의 자신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영국 정부에 있다는 ’외로움 장관‘만이 아니다. ’저녁이 있는 삶‘ 장관, ’존엄한 죽음‘ 장관, ’꿈을 또 하나의 현실로 만들어주는‘ 장관을 둘 수도 있다.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영역으로 자유경쟁에 방치되는 편의점을 ’호혜적 시장경제‘의 생활-거점으로 지원하고, 생물지역주의(bio-regionalism)에 기반한 ’공생체(共生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또 다른 지방세계‘의 탄생을 돕는 ’지방소멸/지방재생‘ 프로젝트를 만들 수도 있다.생기있는 도시공간 만들기, 15분 도시, 스마트폰 프리의 날, 사회적 깨달음 학교, (직업학교가 아닌) ’생업학교‘를 설치할 수도 있다. 김대중 전(前) 대통령이 이야기했다는 ‘정치는 생물’이란 말이 떠오른다. 이때 ‘생물’은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변화무쌍함을 가리키고 있지만, ‘생명’ 정치의 주제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하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 생태정치: 기후변화, 생물종 절멸 등 생태적 문제들에 대처하는 정치- 생활정치: 식의주학(食醫住學) 등 생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 예컨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핵심인 주택문제의 경우 ‘주택 사회주의’에 버금가는 파격적인 정책을 펼 수도 있을 것이다.- 생업정치: 직업이 아닌 ‘생업’(生業). 일자리에 대한 다른 접근. - 돌봄정치: 요양원 수용의 공포에서 자유로운 돌봄체계- 모성정치: 탄생과 양육의 ‘어머니 마음’의 정치 - 존엄정치: 존엄하고도 평온한,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을 만드는 정치- 재난정치: 기후재난시대의 ‘생명선(life line)’을 예비하는 정치- 풍류정치: 생명친화적이면서 미학적인, 우리 전통문화의 흥과 멋을 살린 정치.- 사물정치: ‘사물들의 의회’와 ‘코스모폴리틱스’(라투르), 경물사상(최시형)과 인물균론(人物均論)(홍대용)의 제도화. - 마음정치: 심금을 울리는 정치, 생명의 마음과 감응하는 정치- 해방정치: 억눌린 생명들의 자기해방을 돕는 정치- 공성(空性)정치/영성(靈性)정치: 숭고지향을 드높이는 정치. 구공존이(求空存異)의 정치-등등 그 외에도 생명정치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생명정치는 개인의 욕구를 탐욕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생명정치는 (기업과 국가의 약탈적 자원사용을 외면한 채) 생태문제를 개인과 가정에 전가하는 개인컵 사용 캠페인에 유의한다.생명정치는 산업문명과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이분법적 사고’ 등 개인의 성찰로 환원하지 않는다. 생명정치는 화폐 만능으로 귀결될 개연성이 큰 ‘기본소득’에 찬성하지 않는다.생활주택, 생활임금 등 생활보장을 적극 검토한다. 생명정치는 이념적 성격이 강한 탈성장 체제전환론, 혹은 기후정의론보다, 포스트 성장시대에 걸맞은 다양하고 새로운 경제사회 시스템을 지금여기서 실험하도록 지원한다. 생명정치는 성적(性的) 미결정성과 자기선택을 존중한다. 등등. 그리고 또 한 가지, 생명정치는 ‘공간정치’와 비교되는 ‘시간정치’를 강조한다. ‘살아있는 것’은 무엇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있다. 생명정치는 ‘공간’보다 ‘시간’에 주목한다.근대 산업문명에서 공간은 무엇보다 채굴과 개발의 대상이었다. 생명정치는 ‘생장소멸’하고 ‘생로병사’하는 우리의 실존적 생애주기와 생태계의 생명시간에 유의한다.진보/보수의 ‘선형적 시간’과 구별되는 ‘확산적 회귀의 시간’을 탐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작에서 종말을 향해 가는 ‘시종(始終)의 시간’과 구별되는, 종말에서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하는 종시(終始)의 시간에 주목한다. ‘다시개벽의 시간’에 주목한다. 생명정치는 ‘제국 일본’이 아니라, ‘잃어버린 30년의 일본’에 주목한다. 생명정치의 관점에서 일본은 ‘실패한 국가’일지는 모르지만, ‘실패한 사회’만은 아니다.재난시대의 ‘라이프 라인(life line)’을 제도화하는 일본. 재난 경험을 통해 ‘이념’ 과잉과 ’의미’ 과잉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일본(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참조). ‘탈이념’과 ‘탈의미화’ 속에서 동시에 허무주의를 경계하는 일본. ‘신체’와 ‘정동’을 새로운 삶의 준거점으로 제시하는 일본. 재난 이후 폐허 위에서 새로운 삶의 형식을 실험하는 일본사회에 주목한다. 그리고, ‘생명경제’가 있다. ‘생태경제’만이 아니다. 30여전 년 접했던 일본의 지역자립의 경제학과 생명의 경제론이 떠오른다(『공생의 사회 생명의 경제』). 19세기 유럽에 사회사상가 존 러스킨의 ‘생명경제론’이 있었고, 21세기에는 자크 아탈리의 『생명경제로의 전환』이 있다.그리고, 심지어 ‘전북특별자치도’는 이른바 ‘생명경제’를 비전으로 제시한다(구체적인 프로그램에는 의문이 있다. 예리한 관찰이 요구된다.) ◇ 정치적 소통 ‘방법’의 전환 : ‘시비’를 기리는 정치에서 ‘심금’을 울리는 정치로‘심금(心琴)을 울린다’라는 말이 있다. 이때 심금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 미묘하게 움직이는 마음“이다. 생명정치가 ‘생명의 마음’의 정치라면, 다시 말하면 ‘심금을 울리는 정치’ 아닐까.그러나, 정치의 최종심급은 ‘생명의 마음’이지만, 정치엔 정치 나름의 문법과 작동원리가 있다. 정치와 마음은 ‘정치/마음’의 형식으로 연동되고 있지만, 마음을 정치체계로 ‘직접’ 배달할 수는 없다.정치와 마음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 유권자의 마음은 (여론조사와) 투표를 통해서만 정치화될 수 있다. 정치적 메커니즘을 통해 번역되고, 정치적 문법으로만 작동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민주/반민주’나 ‘국가/반국가’라는 정치적 코드는 사람들 마음에 ‘직통(直通)’할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 경험과 몸 상태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미 반응하도록 준비되어 있다. 거꾸로 열망과 염원의 마음 역시 정치적 코드화되어야 한다. (이때 코드화는 잠정적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흐르면서 해체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성공은 정치적 코드화를 필수적인 조건으로 한다.대표적인 것이 ‘민주/반민주’ 코드이다. 생명의 관점에서 민주화운동은 무엇보다 생명을 능욕하고 파괴하는 권력에 대한 생명의 저항이었다. 그러나 저항의 정치적 형식은 민주/반민주의 민주화투쟁일 수밖에 없다.그리고 ‘민주적인 것’과 ‘반민주적인 것’의 다양한 기준, 조건, 사례가 만들어지면서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장착된다. ‘정강정책’도 그 중 하나이다.(그러므로, 역설적으로 생명정치는 정강정책으로부터 시작될 수 없다.) 이제 ‘코드’는 ‘서사’와 연결된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신화’가 만들어지고, 1987년 6월 극적인 ‘민주항쟁의 승리’로 귀결된다. 생명정치의 코드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생명/반생명’이다. 그러나 생명정치적 사건은 코드만으로 촉발되지 않는다. 코드를 감싸고 있는, 코드에 들러붙어 있는 ‘정동’, ‘감응’, ‘유령’, ‘귀신’으로 이름붙여진, 다시 말하면 ‘신령한 힘’에 의해 격발된다.생명정치의 본령은 여기에 있다. 심금을 울려야 하는 것이다. 심금을 우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개인의 심금을 울리는 방법과 집단의 심금을 울리는 방법이 그것이다.이때 집단이란 생명세계 전체를 가리킨다. 예컨대, ‘큐피드의 화살’과 ‘만파식적의 피리소리’가 그것이다. 이것들로부터 생명정치의 원형적 기예(技藝)를 배운다.(기존 정당들 역시 이미 생명정치, 정동정치의 기술을 구사해왔다. 경조사를 챙기며 슬픔과 기쁨을 같이하고, 식사자리와 술자리를 통해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 관계를 확인한다. 그리고 대규모 정치집회에 관광버스를 동원해 스킨십을 넓히고 정동적 감응을 강제한다.) ‘큐피드의 화살’ 되기: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큐피드의 화살’의 타겟은 그/그녀의 심장이다. 두뇌가 아니다. ‘사랑’은 ‘생각’을 통해 격발되지 않는다.사랑의 마음 역시 원천적으로 신체적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동시에 형태가 없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정동’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큐피드의 화살은 ‘정(情)이 들고’ ‘정(情)이 쌓이는’ 마음을 조준한다.그리고, 거기에 정치적 판단이 연결되면서 감정이 격발된다. 그간 ‘정치적 사건’으로써 화살쏘기는 늘상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진보파의 화살은 주로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이념, 가치, 의미, 정책과 같은 이성적인 것들이었다. 특히 ‘정치적 올바름’의 화살을 쏘았고,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살짝 걷어내면, 그때의 화살 역시,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국민들의 가슴을 격발한 것으로 보인다. 신체적 억압, 억눌린 마음과 자유의 염원이 폭발된 것이다. ‘만파식적(萬波息笛)’ 되기: 만파식적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의 영험한 피리로써, 직역하면 ‘일 만개의 파도를 쉬게 하는’ 피리이다.‘큐피드의 화살쏘기’가 호감이든 비호감이든 직접적인 개인의 감정의 격발을 목표로 한 것이라면, 만파식적의 소리는 비-개체적이고 비-가시적으로 세상 전체를 조율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만파식적은 소리의 힘으로 질병을 물리칠 수도 있고, 전쟁을 막을 수도 있다. 산천초목을 편안케 할 수도 있다. 특히 만파식적은 듣지 못한 이들에게도 감응되는 우주적 울림이다.그리고, 만파식적의 영험한 소리는 아름답고 담대한 이야기와 연결된다. 만파식적은 기후재난과 팬데믹 시대, 전 지구적 생명공동체를 평안케 하는 지구적 생명정치의 ’기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큐피드의 화살이 개인의 마음을 향한다면, 만파식적의 피리소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 생명과 생명 사이에서 공명한다. 큐피드의 화살이 ’감성정치‘라면, 만파식적은 이를테면, ‘신명정치’다.‘영성정치’다. 신명정치는 이를테면 ‘특정한 감정을 격발하기’보다 ‘공(空)’의 에너지가 촉발되기를 기대한다. 기존의 도식과 구별과 프레임을 해체하는 ‘초월적 돌파’의 에너지를 소망한다. ‘생명정치’란 이를테면, ‘큐피드의 화살’의 정치이며, ‘만파식적’의 정치이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화살들’과 ‘피리들’이 있다. 모토, 구호, 슬로건, 몸짓, 심벌, 아이콘, 이미지, 그림, 노래, 의례 등등이 그것들이다.이것들은 모두 유권자의 마음을 향한다. 한 번이 아니다. 수없는 화살이 반복적으로 날아가고, 그것은 친근한 ‘이야기’로, 담대한 ‘서사’로, ‘대서사시(詩)’로 종합된다. 큐피드의 화살이나 만파식적도 하나의 이야기거니와, ‘산업화’와 ‘민주화’ 역시 하나의 서사였던 것이다. ◇ 생명정치, 2024년 총선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사건의 과정에서 생명정치의 ‘무리(黨)’가 형성된다. 150여년 전 수십년 간의 개접/파접(開接/罷接)의 감응체험과 수많은 조직사건 등을 통해 형성된 ‘동학의 무리((東學黨)’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무리’와 ‘주체’는 구별된다. ‘주체’가 영속적이고 초월적이라면, ‘무리’는 일시적이고 경험적이다. 반복적이고 재귀적인 ‘무리 경험’이 또 다른 무리를 형성한다. 그리고 ‘무리’는 ‘세력’이 된다. 생명정치 세력 역시 깊은 산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날 수 없다. 한 번의 사건 만들기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무리가 형성되고, 생명정치 사건이 거듭되면서 세력은 확대 강화된다. 다시 말하면, 사건을 통해 ‘출현’하고 반복을 통해 ‘구성’된다.노동자계급이 노동투쟁을 통해 형성되고, 태극기부대가 태극기시위를 통해서 형성되듯이. 생명평화 탁발순례 5년을 통해 생명평화결사가 만들어지고, 생명평화 진영이 생겨났듯이. 그렇다면, 또 다른 사회적 무리와 세력으로 거듭난 ‘새로운 우리’를 우리는 무어라고 불러야 할까? 생명정치의 관점에서 2024년 총선은 하나의 기회이다. 한국정치가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정치가 노동정치, 젠더정치, 생태정치처럼 정치적 시민권을 얻게 될 수도 있고, 혹 ‘초월적 돌파’의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삶-생명이냐, 아니냐?’의 새로운 정치적 구도, 새로운 정치적 진영이 형성될 수도 있다. 정치적 전환 가능성은 역설적으로 한계상황의 강도(强度)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시 물어야 한다. “한국정치는 바닥을 찍었는가?” “바닥을 뚫고 올라올 힘이 있는가?” 그러나, 그렇게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추락을 떠받치고 있는 낡은, 그러나 단단한 기둥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단단하지만 낡은 기둥일 수도 있다.그런데, 결정적인 것은 아직은 가시화되지 않은, 새로운 무리와 세력의 부재이다. ‘숲의 천이(遷移)’에서 볼 수 있듯이, 전환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떡갈나무의 발아와 성장과 확산만이 숲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다(多)세계적’ 세계관으로 볼 때, 전환이란 ‘단일한 세계’의 변혁이 아니다. ‘또 다른 세계’의 태동을 통해 세계들을 재배치하는 일이다.세계가 세계들이고 사회가 사회들이라면, 새로운 사회의 태동을 통하지 않고서는 전체사회의 배치를 재배치할 수 없다.‘더 많은 민주주의’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협력/경합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제도의 발명이 요구되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적 이념, 새로운 정치의 ‘주제’와 ‘방법’이 요구된다. 우리에게 그 이름은 ‘생명정치’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정치적 변이’의 태동과 전염과 확산을 격발할 정동정치적 사건의 현장이다. 정동정치적 축제들이다.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발발은 그 1년 전 보은취회에서의 수만명 동학당들의 ‘공생체(共生體) 식사’와 시천주(侍天主) 주문과 풍물굿으로 고양된 ‘정동적 힘’, ‘공명의 힘’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올가을, 수많은 큐피드의 화살들과 만파식적들이 공명하는, 전라도 고부 들녘에서의 ‘생명정치 페스티벌’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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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이나미 정치학 박사 경희사이버대 외래교수 [출처=복지국가소사이어티]팬데믹 기간 중 사람들의 만남과 이동이 제한되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이득이 있었으니 그것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였다. 그만큼 교통수단이 내뿜는 공해가 심각했던 것이다.한 사람이 승용차 없이 생활하면 채식하는 것의 세 배 정도 온실가스 절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비행기 한번 덜 타면 채식의 두 배 정도의 효과를 낸다.그래서 유럽에서는 비행기 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플라이트 셰임’ 운동이 한창이다. 반면, 우리는 지금 엔저 현상을 기회로 일본 여행을 하지 못해 안달이다. 플라이트 셰임이 아니라 비행기 타는 것이 자랑인 ‘플라이트 프라이드’가 한창이다. 승용차와 비행기가 망친 환경은 걷기와 자전거로 회복시키는 수밖에 없다. 자전거 인구의 1% 증가는 30년생 소나무 250만 그루를 심는 효과와 같다고 한다.따라서 탄소배출의 주범 중 하나인 자동차 이용을 줄이고 대신 걷거나 자전거 이용을 늘려야 한다. 그럴 경우 다음과 같은 이득이 있다. 첫째, 온실가스가 줄고 공기질이 좋아진다.둘째, 시민들이 운동하게 됨으로써 건강해지고 의료비가 절감된다. 셋째, 교통비가 절감되어 가계에 보탬이 된다.마지막으로 만일 팬데믹이 또 닥쳐왔을 때 걷기나 자전거는 감염위험이 적은 이동수단이 된다. 그런데 정부는 이렇게 이로운 점이 많은 걷기나 자전거 이용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에 인색한 것 같다.탄소 절감에 별반 큰 효과가 없는 전기차 구매는 그렇게 적극 지원하면서, 유럽에서도 이미 널리 시행되고 있는 도보 및 자전거 이용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 기후위기시대와 생태복지 이들에 대한 지원은 사회불평등도 완화한다. 전기차 생산업체는 대기업이고 전기차 구매자도 중산층 이상이겠지만, 차가 없어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이들은 청년이거나 저소득자일 가능성이 크다.따라서 이들은 어차피 복지 수혜자가 될 조건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가 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탄소도 줄이고 불평등도 줄이는, 꿩먹고 알먹는 ‘생태적 복지’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복지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 첫째, 걷거나 자전거 이용시 경제적 혜택을 주는 것이다. 이미 김천시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시민에게 상품권을 제공하는 행사를 한시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를 일회성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상시적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진전시켜야 한다.즉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면 소득공제를 해주거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도보나 자전거 이용의 증거는 만보기, 스마트폰 앱 등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네덜란드, 프랑스에서는 노동자가 출퇴근시 자전거를 이용하면 소득공제 혜택을 준다. 미국의 구글 회사도 노동자들이 자전거와 관련된 비용을 쓰면 세제 혜택을 준다. 일본의 일부 지자체는 자전거 이용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며 토쿄시는 전기자전거를 사는 이에게 보조금을 준다. 우리의 경우, 건강보험료를 낮춰주는 혜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면 건강회복에 도움이 되므로 국가가 지출할 의료비도 줄어든다.또한 이와 더불어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여, 병원을 이용하지 않을수록 건강보험료를 낮춰주는 방안도 필요하다. 그러면 불필요한 의료쇼핑도 줄어들 것이고 병원은 경미한 환자를 치료하느라 응급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둘째, 차가 없거나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교통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가 임산부에게 교통비를 지원하고 있고, 서울시의 경우 19-24세 청년 중 15만명을 선별해 연간 최대 10만원의 대중교통비를 지원한다고 하는데 이를 확대하여 차 없는 모든 이에게 소액이라도 교통비를 지원하자는 것이다.또한 현재 70세 이상 노인이 면허를 반납할 때 10만원권 교통카드를 지급하는데 이러한 혜택을 노인 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확대하자는 것이다.더불어 운전면허의 영구적 반납 뿐 아니라 자발적 임시 정지도 가능하게 하고 그러한 정지 기간 동안 교통비를 소액이라도 지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차를 살까 말까 고민하는 이들과 장롱면허자들이 차와 면허 없이 지내는 것을 얼른 선택하게 될 것이다. 셋째, 노인들에게 교통비를 지급하는 것이다. 이미 안산, 화성, 광명, 남양주 등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교통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또한, 현재 지하철 적자의 한 원인으로 노인 무임승차가 문제시되고 있는데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노인들에게 지하철 무료이용권이 아니라 교통비를 직접 현금으로 지급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그렇게 하면 노인들은 불필요한 지하철 이용을 자제할 것이고 또한 버스를 이용하는 노인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는 또한 노인의 존엄성과 자유도 회복시킬 수 있다.어떤 노인은 자존심 때문에 일부러 돈을 내고 전철을 탄다고 하는데, 그렇게 한들 다른 승객들이 그것을 알 리가 없다. 또한 출퇴근 시간에 사람들로 꽉찬 전철을 이용하는 노인의 경우 무임승차하면서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인다고 한다.따라서 이런 이유들로 인해 노인들의 전철 무임승차는 노인의 존엄성과 이동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노인들에게 무료승차권 대신 직접 교통비를 지급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진다. 넷째, 주거복지와 연계하는 방식이다. 직장인에게 걸어서 출퇴근할 것을 권하려면 직장이 주거지와 가까워야 한다. 따라서 정부나 기업이 직장인들에게 직장과 가까운 주거지를 마련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주거 목적으로 근무지 근처의 집을 구입할 경우 취득세를 줄여주고, 전월세 집을 구할 경우 전세자금대출 이자 감액 또는 월세 일부 지원을 하는 것이다. 또한 사무실과 상가의 늘어나는 공실을 주택으로 변경하여 근처에 근무지가 있는 직장인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 정치적 상상력이 기후위기 극복의 힘 이러한 다양한 복지 혜택의 제공과 더불어, 빨리 실행되어야 하는 것은 도보ㆍ자전거 친화적인 인프라의 구축이다. 자전거를 위한 인프라에는 자전거 도로, 자전거 주차장, 자전거를 위한 신호체계 등이 있다.앞으로 도로는 점차 자전거 통행이 기본이 되고 버스와 자동차 운행은 부수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도심은 도보자와 자전거 이용자만 들어올 수 있어 차 없는 공간이 되었다.네덜란드의 경우 국민 1700만 명이 2340만대의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어 ‘자전거의 나라’로 불린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자전거가 전철보다 3배가량 속도가 더 빠른데 그 이유는 ‘자전거 고속도로’가 있기 때문이다.북유럽에는 자전거 전용 주차장 등 자전거를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자전거 도로와 인도는 완벽히 분리되어 있고 자전거를 위한 신호등도 따로 설치되어 있어 차들이 멈추고 자전거만 지나갈 수 있게 하고 있다. 콜롬비아는 일요일과 공휴일에 주요 도로를 막고 도보자와 자전거 이용자만 지나가게 한다. 우리도 이러한 선례를 따라 자전거 도로를 연장, 확대해야 하고, 직장, 학교, 아파트, 주택, 공공시설, 학교, 식당, 카페, 거리 등 사람이 머무는 모든 곳에 자전거 주차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공용자전거의 수도 늘리고 또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도보자에게 좋은 환경도 조성되어야 한다. 자전거 도로와 인도의 분리를 명확하게 하고, 공원, 가로수길 등 걷기 좋은 길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또한 곳곳에 쉬어갈 수 있도록 벤치를 많이 마련하면 더욱 좋다. 도심에 걷기 좋은 녹지를 많이 만들면 도시의 기온을 낮추는 효과도 생길 것이다. 복지혜택 제공, 인프라 구축에 이어 교육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정부, 지자체, 학교에서 시민이나 학생들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수원시의 경우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자전거 안전교육’을 실시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어떨까?또한 중고등학교 정도에서는 자전거 수리방법까지 가르치는 것이다. 더불어 학교 부지에 자전거 주차장을 넓게 확보하고 학생들에게 무료로 대여자전거를 공급한다. 그래서 미래 세대는 자전거를 자신의 몸의 연장으로 여기고 주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할 경우 점수에 반영하여 내신이나 수능에 가산점을 주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 또는, 과거의 체력장 대신 현재 학생건강체력평가가 시행되고 있다. 걷기와 자전거 이용을 어느 정도 하면 그것으로 ‘달리기와 걷기’ 항목을 대신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실시하여, 도보와 자전거 이용에 따르는 여러 공적인 혜택을 안내하고. 더불어 환경, 건강, 경제적 이익을 널리 알려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권, 안전 이슈와 결합하는 방식을 들 수 있다. 음주운전자의 면허정지 기간을 대폭 늘리고 면허취소 기준을 강화하여 운전의 기회를 줄이는 것이다.또한 학교 등 아이들이 있는 곳 근처에는 아예 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차 보다 사람이 우선시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6월 15일 드디어 기온이 ‘산업화 이전 1.5도를 초과’하여 앞으로 극한의 기상 이변과 돌이킬 수 없는 기후 재앙이 예상되는 기후비상사태를 맞이하고 있다.이럴 때 국가는 시민들이 자신의 삶과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데 공적 자금을 써야 한다. 칼리스에 의하면 화석연료 기업, 항공사, 유람선, 거대여행사가 아니라 친환경 산업, 의료, 돌봄 인프라 재건에 국가 예산을 써야 한다.무엇보다 자연과 시민이 부담을 떠안지 않고 경제성장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뽑아내고 환경파괴에 일조한 자들이 공적 자금 마련에 부담을 지도록 해야 한다. 이나미 박사는 현 경희사이버대 외래교수, 동아대 전임연구원, 생태적지혜연구소 감사, 생명사상연구소 이사, 한국정치사상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주요 저서로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한국의 보수와 수구』, 『이념과 학살』, 『한국시민사회사: 국가형성기 1945~1960』, 『생태시민으로 살아가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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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임형택 Like익산포럼 대표. 제7.8대 익산시의원지금의 정당 체제를 가지고서는 대한민국의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는 공감대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기득권 양당은 자체적인 정화력과 진화력을 상실했다.정치의 담론과 도덕이 붕괴하면서 국민이 가장 불신하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기존 소수당 또한 확장성의 한계가 있다.과거의 낡은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지향하는 압도적 담론과 깨끗한 도덕성과 정치문화를 갖춘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과 정치 대전환이 절박한 시점이다. ◇ 정치불신과 퇴보하는 전북 90% 이상 일당이 독식하고 있는 전북의 정치 변화는 더더욱 필요하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며 권력의 독식은 지역경쟁력을 현격하게 떨어뜨린다.지난 수십 년간 전북이 가장 못 살고 퇴보하고 있는 것으로 증명이 되고도 남는다. 전북지역에서 일당 독식의 정치와 그에 기반한 지방행정이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24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최근 신당 창당 움직임들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북에서도 ‘전북지역당’ 창당 논의가 올해 2월부터 태동하여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지난 우리나라 정치 역사를 되돌아보면 특출한 인물을 매개로 만들어졌던 제3당은 성공적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결국 자멸하거나 양당의 영향력 아래로 흡수되었다. 이 시점에서 신당에 국민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담론, 새로운 정치문화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전북지역당은 정치전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운 담론의 핵심은 누가 광폭의 연합정치를 실천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보여진다. 양당의 적대적 공생, 퇴행적 편가름의 폐해가 큰 상황에서 지금의 정당 체제 가지고서는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 신장, 시장의 효율과 경제 안정(右), 양극화 해소와 약자의 복지증진(左), 환경생태의 보전과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근본적 전환(녹색) 이 세 과제는 지금까지는 서로 대립 상충 되는 점이 많았지만, 이제 이들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해결하지 않으면 길이 안 보이는 단계에 와 있다.대한민국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연합정치는 선택이 아닌 반드시 성공해야 할 필수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중앙정치가 시도하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의 독점적 양당체제로는 어려운 현실이다. 지역당은 지역의 현안을 중요하게 다루는 특성을 갖고 있으면서, 아울러 낡은 이데올로기, 퇴행적 편가름에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위 3가지 과제에 대한 광폭의 연합이 용이하다.지역당은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좌우와 녹색이 어우러지는 연합정당, 광폭의 연합정치로 사회 대통합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지역감정이 한국 정치의 큰 병폐 중 하나인 상황에서 지역당은 오히려 영호남의 일당 독식 지배라는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바람직한 영호남의 지역당들은 서로 연대해서 지역감정이라는 낡은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하고 국가정치를 넘어서는 선진적인 정치 또한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정치문화의 핵심은 누가 진성당원에 기초한 일상의 정치를 실천할 수 있느냐이다. 지역당은 정치문화 자체를 바꾸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진성당원들이 생활 현장에서 지역 문제에 천착하며 토론과 합의, 설득과 공감, 새로운 문화를 연습하는 일상적인 정치학교 될 것이다. 그러면서 시민의 일상과 깊이 관계하며 삶의 양식과 의식을 바꾸는 생활 밀착형 정치, 도덕성에 기초한 밝고 명랑한 정치를 펼쳐나갈 것이다. 나아가 온라인 정치플랫폼을 통해 투명하고 평등한 정당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실천하는 민주주의 학교가 될 것이다. 스위스, 대만은 핵발전소 추가 건설 문제, 성장촉진제 돼지고기 수입 문제 등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지역당은 새로운 담론, 새로운 정치문화를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중앙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정당이 아닌 지역으로부터 튼튼하게 준비되어 중앙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질 수 있다. ◇ 동학농민혁명 정신, 새로운 정치혁명을 생각한다 지역당이 있었다면 전북특별자치도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전라북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전북특별자치도로 이름이 바뀌는데 도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없이 추진되어 무척 아쉽고 우려되는 면이 있다.지역당이 있었다면 전북특별자치도 추진 초기부터 공론장을 만들고 14개 시군과 함께, 도민들과 함께 만들어나갔을 것이다. 모름지기 특별자치도라면 생명평화, 기후대응, 여성친화, 청년, 시민주권, 지역당 특별자치도 등 차원이 다른 담대한 비전들을 꿈꾸고 공론이 형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지역당과 함께 지역만의 특별함을 담은 특별자치도들이 곳곳에서 발현하는 그 날이 다가오기를 바라고 희망한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이 절박한 시점이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등 과거의 낡은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지향하는 연합정치의 압도적 담론과 지역에 튼튼하게 뿌리 내린 자치 정당문화, 깨끗한 도덕성을 갖춘 새로운 정치세력이 전북에서 발화를 준비하고 있다. 전북은 정쟁과 외세에 의해 병들어가고 있던 구한말 조선을 구하기 위해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던 중심지이고 근대정신의 발상지이다. 2023년 대한민국의 대전환을 위해 또 한 번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전북을 주목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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